“승호씨는, 사회 불안이 좀 있을 수도 있어요.”
"???"
당시 내가 했던 첫 반응이다. 학부 시절, 심리평가 수업에서 교수님이 MMPI 검사를 하고 해석 상담까지 받아 오는 과제를 내주셨고, 해석 상담을 시작하던 찰나였다.
나는 학부 때 MBTI를 하면 항상 ENFJ가 나왔다. 그것도 극강의 엔프제. 동아리를 세 개 운영하고, OT와 MT에도 대부분 참여하고, 술자리도 부르면 재깍재깍나가는, 전형적인 재미 있는 선배 역할을 하는 데 맛들려 있던 나에게 ‘사회 불안’이라는 말은 수용 여부를 떠나 말 그대로 낯선 단어였다.
그런데, 이를 뭔가 그냥 넘기기에는 꺼림칙 했다. 왜냐면 다른 검사의 내용은 모두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했는데, 사회 불안 딱 한 가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을 거면 다 맞던가, 틀린 거면 다 틀리던가. 이렇게 토씨 하나만 틀리면 어째 검사가 맞고 내가 틀린 것 같지 않는가. 묘하게 완결성을 해치는 이 '사회 불안'이라는 마차는 내 정신을 묶은 채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원래 외향적이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나에 대한 묘사를 들어보면, 죽은 줄 알았던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울어본 적이 없고, 안아주지 않아도 큰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냥 두고 엄마가 장을 보러 갔다 와도 울지 않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편한 아이', 심리학적 용어로 치환한다면 '순한 기질'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극도의 외향인으로 살고 있었을까. 한 가지 떠오르는 가설은 유치원 경험의 부재이다. 나는 어릴 적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못했다. 그나마 다녔던 유치원도 등록 했다 거의 금방 끊었으니 다녔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주로 집에서 지냈다. 이사를 자주 다녔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으니 친구를 만들기도 어려웠고, 주로 방에서 혼자 놀았다. 있는 책은 전부 읽고, 그게 다 떨어지면 공상을 하고, 공상이 떨어지면 손가락으로 놀고. 나이가 들어 엄마에게 왜 유치원을 보내주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답해주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뭔가 숨기는 것 같았지만 알려주지 않으니 더 물어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 시절에 대문자 E로 살았던 나의 시간은 유치원 시절을 보상하려 했던 방어 작용이었을까? 정답은 모르지만, ‘사회 불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온 이후로는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 국이 짜게 식듯 반감되었다. 만약, 디오니소스가 옆에 있었다면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라며 상담 선생님을 혼내주지 않았을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대인관계를 넓히고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던 즐거움이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이런 즐거움에는 뭔가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구멍난 독에 계속 물을 들이 붓는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이 구멍난 독을 어떻게 매꿔야 하는 건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구멍난 독을 채우는 방법은 물을 계속 들이붓는 게 아니라 그 독을 통째로 바닷가에 던지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바다는 당연히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곤 했는데, 사실 그 때마다 거짓말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은 아니지만 또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 내적으로는 거짓말인 그런 거짓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비유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보통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에 별이 담긴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이 애정하는 걸 말할 때, 맑은 눈에 생기가 흐르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곳곳에서 은하가 빛나고 있는. 그런 사람의 우주는 특유의 중력으로 나를 끌어 당긴다. 그러면 떠오르는 생각. 당신을 읽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읽고 싶은 사람. 그 읽고 싶은 사람은 애정하는 걸 말할 때 눈 속에 별을 담지한 사람. 그런 우주를 관측하고 기록하려는 충동을 참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생을 망망한 세계에서 나를 던질, 내가 읽고 기록할 별을 찾는 관측의 시간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이라는 별에 나만의 이름을 붙일 순간을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