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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24. 2023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나'를 키우는 일, 그리고 결혼과 육아에 대하여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 일조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봉사활동 같은 일을 많이 하는데, 한 번은 놀이공원을 갔었다. 정확히는 대전 오월드. 장거리 운전이 처음이었고 초행길이라 아침부터 바짝 긴장하며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건 가을 날씨 아래 얼음물을 찾는 나였다.


 아침에 다 같이 모여 인원 체크를 할 때만 해도 이 정도 더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입장 팔찌를 배부받고 입장한 지 30분 만에 나는 함께 지도하던 선생님들과 빠르게 지쳐갔다. 빙글 도는 놀이기구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부실하게 먹은 아침이 후회되면서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 속을 게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먹었으면 벌써 뱉었겠다' 하는 안도감과 죽을 것 같은 메스꺼움, 그렇다고 아이들의 즐거움을 방해할 순 없으니 함께 웃기도 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죽을 상이었고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놀이기구 두어 개 만에 두 다리는 퉁퉁 부어서 질질 끌려다녔다. 오르막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과 평야를 걷고 또 걸었다.


 정말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벤치를 찾을 때마다 아이들을 쉬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해야 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땀을 흘리는지 자각도 없었고, 어린 초등학생들이라 날씨로 인한 상태 악화나 탈수 상황이 오지 않도록 계속 확인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오르막을 오르는 한 어머니를 마주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잠깐 쉬고 다시 걷기로 한 시점에 우리는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내리막. 그 길의 초입에서 올라오고 계신 어머니는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있는 힘껏 밀고 계셨다. 진짜... 이루 말할 수 없는 존경심이 내 안에서 일렁였다. 이 날씨에 나는 나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초등학생 한 두 명을 케어하는 것도 힘이 들어 선생님들끼리 으쌰으쌰 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쌍둥이가 탄 2인용 유모차를 혼자서 두 다리로, 두 팔로 정말 있는 힘껏 밀고 계셨다. 뒤 따라오는 아버지는 짐가방을 한가득 들고 다른 한 아이를 케어하며 오고 계셨다. 분업이 되고는 있지만 그 업 자체가 대단히 큰 일이라 사람이 더 필요해 보였다.




 나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바쁜 사람이다. 과거에 묶여있고 미래를 앞당겨 생각하느라 불안하기도 행복하기도 한 사람이다. 끝없는 자아비판과 성찰에 빠져 어느 날은 집에만 있을 때도 있다. 요즈음은 앞당긴 미래로 '결혼'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금쪽이' 같은 아이가 있으면 난 정말 오박사 님처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 꽃을 피우다 보면 늘 결론은 비슷하게 나온다.

나는 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아이'라는 사랑의 결실과 탄생은 가히 축복받아 마땅하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정말 내 기쁨이자 사랑이 될 수 있으며,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이자 가족이 될 수 있는가?'에 답하자면 아직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나 하나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부모님과 함께 살며 대학을 다니면서 드는 생각의 변화는 날이 갈수록 '감사함' 뿐이다. 자취를 했다면 내가 조금 더 정서적인 독립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걸로 보아선... 답이 없다. 다들 빨래는 언제 하고, 설거지는 언제 하며, 운동은 언제 하는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물론 결혼은 멋모를 때 해야 한다, 완벽한 준비란 세상에 없다, 등등 말이 많지만 난 아직도 나를 키우는 것조차 벅차다. 나의 2세를 위해서라도 나를 챙기는 일은 거뜬히 해낼 때에야 아이를 낳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나부터 챙겨야겠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존경한다. 아이를 챙길 때 챙기더라도, 사랑으로 키우고 마음으로 보듬더라도,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일어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에게로 퍼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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