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Nov 08. 2023

"E"사회에 "I" 등 터진다.

집순이의 불안, 사회의 내 지분에 대하여

대문자 E, 나의 '외향인 시절' 이야기

 전공하고 있는 학과의 말미를 달리는 시점. 내가 갖고 있는 꿈과 미래는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것이었다. 20살에 입학했을 때에는 너무 기뻤다. 나와 같거나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웃고 떠들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교내 동아리를 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술을 한탕 마신 사람처럼 즐길 수 있던 나였으니까. 처음 본 친구도 바로 자리에 앉혀 술 한 병을 비우게 하는 게 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외향적 에너지는 딱 20살에서 그쳤다.


대문자 I, 나의 '내향인 발견' 이야기

  코로나 시절로 인해 강제로 봉인된 나의 20살은, 어쩌다 한 번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극단의 외향적 에너지를 내뿜게 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학교 수업을 나갈 수 있었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선배 얼굴도 잘 모르는 상태로 후배를 맞았다. 챙길 줄도 모르고 그냥 밥부터 사 먹이는 것부터 했다. 후배를 포함해 처음 보는 동기와 선배의 얼굴들을 마주치며 느꼈던 것은 나의 내향적 천성이었다.



사실 나는 집이 좋더라.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집을 나가리라 선언을 했었다. '선언'이라고 표현할 만큼 입이 아프도록 부모님 앞에서 독립을 논했다. 어영부영한 20살을 지나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한 것은 21살. '독립'이란 말이 쏙 들어간 건 아마 그 끝무렵이었던 것 같다.

 학과 특성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갑작스레 협업하는 일도 잦았고, 네 친구가 내 친구라 인사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한결같이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대해야 했다.  '바닥이 좁다'라고 하던가. 사람 많아 마주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 지역이나 기관에 가도 우리 학과 선배는 꼭 있었다.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선배들은 꼭 한 마디씩 했다. 정말 좁으니 학과 생활 잘해야 한다고.


 물론 어느 전공이든, 어느 분야든 다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좁은 바닥'의 이야기는 내게 부담이 되었나 보다. 어딜 가도 밝은 모습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니 기운이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밝은 모습에 대한 강박이 느껴졌고, 이후에는 그 모습을 유지하는 나를 상상하기만 해도 축 늘어졌다. 그 '좁은 바닥'에서는 소문도 빨리 돌았다. 좋은 소문은 천천하고도 느긋하게 돌았고, 나쁜 소문은 불붙듯이 빠르게 번졌다. 유익하거나 도움이 되는 소문은 비밀리에 돌았다. '정보의 소외감'까지 느껴지기 시작하자 점점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집이 정말 좋았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억지로 나의 텐션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으니까. 집이 아니더라도 나를 아는 사람 없는 외진 곳이면 좋았다. 처음 가보는 지역의 카페에 가서 이렇게 글을 써도 좋으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은 나를 아예 모르는 장소에 가야 해소가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피해 살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내가 미워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미워하거나 피할수록 손해는 나의 것이었다.


  내가 가장 위안이자 발판으로 삼고 다시 사회로 섞여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있다. 잠깐 숨이 막힐 때면 잠시 쉬었다 돌아와도 나를 받아주는 사회와 사람들은 있다는 것. 집을 이렇게까지 사랑해도, 사회로부터 발을 잠깐 뺐다가 담가도, 다시 자리가 난다는 것. 그거 하나 믿고 다시 사람들 틈에 섞였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만약 나보다 사회의 경험과 쓴맛을 더 보신 분이라면 아마 웃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이렇게 지쳐서 어떡하냐는 우려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벌써부터 들어온 말이니까. 그리고 다들 한 번씩 겪는 일일 것 같다. 나는 이 '좁은 바닥'에서 '한계'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쓰고 생각하게 될 줄 몰랐다. 힘에 벅찬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친한 동기랑 일의 말미에 꼭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우리 어떻게든 해냈네."


그리고 다음 일을 맞이하며 다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또 걱정한다. 그럼 다시 주문처럼 나오는 말.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내가 해내겠지."


 앞으로 맞이할 사회와 환경이 내게 얼마나 각기 다른 변수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내가 한 가지 알았다는 것. 사회에 내 자리 하나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다시 돌아가기 두려워져도 내 자리는 있다는 것. 아무리 내 자리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내 쓸모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 것 같다. 너무 힘들어도. 너무 집이 좋아도. 너무 기가 빨려도. 어딘가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하는 당신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