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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May 11. 2024

방금 건져진 물미역입니다.

릴스로부터, 숏츠로부터, 도파민으로부터

 오랜만에 글을 쓴다. 휴학을 반 학기만 했더니 코스모스 졸업자가 나 포함 3명뿐이었다. 이제 막 새싹을 틔워가는 동기들 사이에서 혼자 졸업 준비로 영글어가려니 여간 외로운 게 아니었다. 새내기도 제대로 맞아보지 못한 불운의 코로나 시기를 지났지만, 어느새 내 학번은 (휴학 없이) 졸업학번에 다다랐다. 동기 한 명은 대학원 조교로 일하고 있어 자주 마주쳤다. 약간의 편법으로 학사일정도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외로운 졸업에 그나마 도움이 되곤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학교에선 해당 학기 졸업자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수라서 그런 걸까. 더 외로웠다. 조교 일을 하는 동기는 자기가 책임지고(같은 전공 대학원 조교라 학부 일정도 공유한다) 졸업을 마무리하게 돕겠다며 걱정 말랬다. 마음이 놓였지만 어딘가 불안했다.


 취업상담을 받았다. 추천해 준 기사 자격증 하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3월 개강 즈음부터 시작된 필기시험에 겨우 합격했다. 수포자라 세 과목 중 한 과목은 무지성으로 찍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정승제 선생님의 강의를 다시 들으며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다. 졸업 요건으로 주어진 과제도 해내면서 시험 준비도 했다. 갑작스레 주어진 팀플 과제도 쳐냈다. 그러면서 필기에 합격했다.

 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중간고사를 보는 주간에 실기시험이 잡혔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선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중간고사를 앞둔 대학생의 부담감은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 너무 선해서 가만히 공부만 했다. 쉴 틈이 생기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던 난 점차 빠르고 확실하게 쉼이 보장되는 숏폼에 빠졌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들어보지도 못한 KTX 할인 예매 방법을 알 수 있었고, 몇 번 내리다 보면 금세 까먹고 유행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껴안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면 그렇게 자기 직전까지 릴스만 봤다. 시끌벅적한 연예인,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의 목소리가 없으면 허전할 정도라 꼭 무언갈 틀어두었다.


 먼저 졸업해 취업한 친구를 만났다. 요즘 뭐 하고 사냐-는 말에 친구는 늘 그랬듯이 팀장을 욕했다. 집에 가면 드라마 보느라 바빠서 행복하다고. 친구는 최근에 핫하게 뜬 드라마를 줄줄 꿰고 있었다. 반면, 이거 봤냐는 친구의 질문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봤으니까. 환승연애 3,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눈물의 여왕, 선재 업고 튀어, 나는 솔로, 다 안 봤다.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쁘냐며, 요즘도 책 읽고 글을 쓰냐고 물었다. 하지만 글을 안 쓴 지도 오래되었더라. 친구가 정말 의아하게 쳐다봤다. 한 때 내 취미생활을 멋있어하던 친구여서 그런 걸까 싶다. 요즘 힘들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기엔, 난 그저 취업 준비와 졸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친구는 돈을 벌고 생산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내가 그보다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핑계 같다는 생각에 '그러게 나 요즘 뭐 하지...' 하며 얼버무렸다.


 도서관을 간 지도, 글을 쓴 지도, 누군가의 글을 읽은 지도 오래되었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말 그 이상의 마음을 담아서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게 섞인 무언가를 표현해 도닥여줄 수 있던 내 힘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저 30초 내외로 만들어진 양산형 영상들에서 나오는 감탄사만 연발하게 되었다. 내 하루 끝에 정돈된 말로 요약하던 법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리기도 했고.


 툭하면 몸이 쳐졌다. 최소한의 공부나 과제만 하고, 최소한의 사람만 만나 약속을 잡았다. 몸이 쳐지니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엄지손가락 움직이는 일뿐. 운동을 하겠다고 투두리스트에 적어두어도 소용이 없었다. 활기찬 건 내 휴대폰 속 영상들 뿐이었다. 운동을 하던 몸도 아니라서 근육 없이 몸이 흐물거렸다. 더욱더. 크게 느껴지던 발표까지 해결하고 나니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시간이 보약이란 말이 맞다. 그래서 더 쓰고 고되다. 오늘도 당장 속이 좋지 않아서 누워만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도 그 마음 고이 접어 어딘가에 두고, 앉았다. 앉아서 글 한 편 쓰고 속을 달래자 싶어서. 이제야 보인다. 지난날 동안 쉬는 시간 틈틈이 가졌던 확실하고 빠른 보상에 내가 잠기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고, 난 이제 막 물에서 건져진 물미역 같지만, 그래도. 다시 말려질 나를 위해 글을 썼다. 다시 하면 된다. 미래의 내가 언젠가 마주할 날을 위해, 어딘가에 있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뽀송함의 도약이 될 글을 썼다. 나에게 다짐 같은 글이다. 읽는 당신에게도 무언가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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