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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Nomadic Person Jun 29. 2022

노예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Kara Walker’s A Subtlety 

Kara Walker, A Subtlety (The Marvelous Sugar Baby)   Copyright ⓒ Jason Wyche


“Black Lives Matter” 라는 문구는 아마 2020년도 전세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검색되었을 것이다. 이 운동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로 기록되었고, 2021년 노벨 평화상에 노미네이트까지 되었다. 미네소타주에 사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George Floyd는 5 월 25일 백인 경찰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 장면을 찍은 영상이 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그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던 인종차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뉴스에서는 흑인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거나 큰 부 상을 당했다는 내용이 아주 흔하게 등장하고 그저 단순한 사고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에브리함 링컨 이 노예해방을 주장하며 벌어진 남북전쟁이 1865년에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배우지만 2021년도인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이다. 흑인들은 자유를 외치며 우리의 삶과 생명도 중요하 다라고 외치고 있다.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의 어둡고 오래된 설탕공장에 높이 12m 길이 24m의 거대하고 하얀 스핑크스 자세를 한 흑인 여성 조각이 놓여 있다. 공장 대지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 웅장한 조각상 주변에는 흰색과 대조적인 어두운 브라운 색의 작은 소년 조각들이 바구니를 든 채로 서 있다. 이 압도적인 조각은 검은색 실루엣을 이용하여 미국 역사를 풍자하거나 비꼬는 작품으로 유명한 뉴욕 출신의 흑인 여성 작가 Kara walker의 작품이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실루엣 종이를 자르고 붙여 미국이 감추고 싶어하는 흑인노예와 인디언 정복 역사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보여주는 대신에 이번에는 압도적인 사이즈의 흰색 조각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타이틀 Marvelous Sugar Baby에서 드러나듯 하얀 설탕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이 놓인 공간은 미국의 유명 설탕회사 Domino의 설탕정제공장이다. 지금은 문을 닫아 역사적인 공간으로 남아있던 폐 공장에 Kara는 자신의 첫 번째 공공미술을 선보인 것이다. 일반 갤러리 공간과 다르게 설탕정제로 인하여 검고 끈적하게 변해 버린 벽과 대조되는 하얀 조각은 시각적으로도 드라마틱하다.


Kara Walker, A Subtlety (The Marvelous Sugar Baby)   Copyright ⓒ Jason Wyche


그녀의 조각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얀 색깔과는 대조적으로 흑인여성을 표현하였다. 두꺼운 입술, 큰 가슴과 엉덩이, 머리에는 두건을 쓴 모습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흑인여성의 외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자세 또한 서 있거나 앉아있는 것이 아닌 팔을 앞으로 내밀고 무릎을 꿇은 스핑크스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각의 표정은 근엄할 정도로 당당하다. 관객들은 이 거대하고 경이로운 느낌의 하얀 조각상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는 공장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위엄있게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복종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 성기까지 다 드러내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 마치 그 시대의 흑인여성 노예들처럼.


하얀 스핑크스 주변을 마치 수호하듯 까만 소년 조각상들이 바구니를 안고 있다. 어린 소년 들은 흑설탕 빛의 당밀을 발라 노골적일 정도로 그 당시의 어린 노예들의 삶을 보여준다. 설탕과 흑인 노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과거 하얀 황금이라 불리고 권력의 상징이었던 설탕을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마트에서 구매하고 사용할 정도로 미국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고 그로 인해 기업들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식민지에서 흑인 노예들이 사탕수수를 뜨거운 날씨를 견뎌내며 캐내야 했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온 흑설탕을 뉴욕의 정제공장에서 다시 하얗고 부드럽게 만들어 내었다. 소비자의 손으로 설탕이 들어오기까지 노예의 노동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19세기 후반 노예는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피지배 계층이었던 흑인들과 이민자들은 그 어려운 환경에서 낮은 임금으로 노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Kara Walker, A Subtlety (The Marvelous Sugar Baby)   Copyright ⓒ Jason Wyche


인류의 4대문명 중의 하나라 일컫는 이집트 문명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노예들의 희생과 노동력으로 우리가 찬란하였다 칭하는 문명을 사막에 세웠다. 지배를 당하던 유태인들을 이용하여 도시를 계획하고, 파라오의 사후를 위하여 피라미드와 그를 지키는 수호신, 스핑크스를 세웠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의 위치에 서 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자신들의 군대를 주둔하고 세계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링컨 이후 19세기 말에는 노예들에 의한 사탕수수 재배는 폐지되었지만, 제국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 2의 노예계층이 필요하였다. 기회의 땅, 자유의 땅, 이민자들이 세운 제국으로 온 전쟁 피난민들과 자유의 몸이 되어 일자리를 찾는 흑인들이 명칭만 바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노예제도를 이어 나갔다. 하얀 황금이라 불리우던 설탕이기에 어쩌면 그들에게 설탕정제공장은 노력하면 금을 캘 수 있는 금광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금광이 아닌 사막이었다. 전쟁과 가난으로 본국을 버리고 온 많은 이민자들에게 뜨거운 열기와 극심한 노동환경을 견디며 스핑크스를 세우라고 채찍질만 해대었다. 


설탕은 원래 동남아 원산지로서 아랍의 왕실과 유럽의 귀족들만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트릿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설탕을 대량생산 하기 위하여 사탕수수를 중남미에 심으며 아프리카 노예들을 이주시켜 강제 노역을 시키었다. 그저 달콤한 맛을 더 느끼기 위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자랑하듯 과시하기 위하여. 권력과 제국의 상징이던 설탕은 이제 미국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이 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조각을 스핑크스 모형으로 만든 이유를 제국주의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마치 그 당시의 스핑크스와 같이 눈처럼 하얀 설탕은 노예들의 희생으로만 얻을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미국인들은 파라오처럼 많은 수의 노예들이 무임금과 초과 노동으로 죽어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설탕을 소비하였다. 이런 처참한 역사를 보여주듯 엄청난 규모의 공장 내벽은 끈적이고 검게 그을렸으며 공장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내와 다르게 처절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를 뿜는 공간이다. 250여명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노동 착취로 인하여 뉴욕 역사상 가장 길게 20달 넘도록 파업을 하였고, 2004년 이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바로 이 참혹한 공간에 흰 설탕으로 만들어진 흑인 여성이 알몸으로 엎드려 누워있다. Kara의 작품은 단순히 그 당시 사탕수수를 캐던 흑인노예의 비참했던 삶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계층간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종과 상관없이 그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뒤늦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달콤한 하얀 가루를 일반가정에 공급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뜨거운 증기를 맨몸으로 견디고 위험한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서 인생을 보내야만 하였다. 작품 타이틀에서도 드러나듯 그 당시 학대 당한 블루칼라 노동자들, 슈가 베이비들을 위하여 역사가 되어버린 쓸쓸한 공장에 세운 추모상인 것이다. 작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하여 흑인 여성을 매개체로 선택하였다.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지배자와 피지배자,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등 여러 계층의 가장 약자였던 흑인 여성노예는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Kara Walker, A Subtlety (The Marvelous Sugar Baby)   Copyright ⓒ Jason Wyche


미국에서 설탕은 가장 큰 산업으로서 제1의 경제국가 뿐만 아니라 문화국가로도 만들게 하였다. 왜 뉴욕 미술관이 고흐와 피카소와 같은 유럽의 유명 화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일까? Domino 회사가 바로 그 주역이었다. 그 정도로 막대한 부를 창출한 산업이었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과 다르게 미국은 일자리가 넘치는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예제도와 이민자들의 삶이 있었다. 물론 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흑인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미국의 주류에 들어가기가 힘들어 하층계급에 머물러 있고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도 되는 대상이다. 이민자들도 이제는 유럽 대신 남미와 아랍, 아시아에서 오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설탕 대신 다른 산업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고 그들의 삶은 대우받지 못한 채 미국의 경제를 밑받침 해주고 있다.


Marvelous Sugar Baby의 본 타이틀은 Subtlety (정교함)이다. 이 말의 기원은 북유럽 왕실 세프가 흰색 각설탕을 처음으로 “정교함”이라 칭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희고 고운 입자에 정교할 정도로 네모나고 달콤한 신의 선물 같은 설탕은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상징이었던 설탕이 미국에서는 국민 누구나 소비할 수 있게 만들며 20세기의 진정한 제국이 미국이 라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였다. 즉 제 2의 스핑크스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수의 이민자들, 노동자들, 그리고 유색인종의 삶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고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지금도 심한 빈부격차와 계급간의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Kara Walker의 작품은 흑인여성의 삶 혹은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흑인 노예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단편적이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제국에 의해 착취당하는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karawalkerstudio.com/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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