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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Nomadic Person May 22. 2023

생존 여성작가 '작품값 1위' 쿠사마 야요이

콜렉터들이 주목하는 이유

노란 호박에 검은 물방울 무늬가 잔뜩 박혀 있는 작품은 미술을 전혀 접해 본적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봤을 정도로 친숙합니다. 바로 94살의 일본 현역 여성 작가 쿠사마 야요이(b. 1929)입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전시되어 있는 호박 조각 작품은 4년만에 정상 개최된 아트바젤 홍콩에서 각각 45억5천, 78억에 팔렸고, 그 후 열린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는 105억에 팔리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동양의 MoMA라고 불리는 홍콩 M+미술관에서는 쿠사마의 대규모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을 맺어 미술계를 넘어 패션계까지 사로잡았습니다. 


9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전세계 콜렉터들은 왜 일본 출신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에 열광할까요? 대체 그녀의 작품 어떤 점이 특별한지 쿠사마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Yayoi Kusama's "Pumpkin" | STEPHEN MANSFIELD PHOTOS   ©The Japan Times



1929년생인 쿠사마 야요이는 광활한 땅에서 작물의 씨앗과 묘목을 판매하던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랐을 것 같은 그녀는 사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요. 방탕한 아버지와 학대를 자행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그녀는 정신분열증을 겪게 됩니다. 어느 날 빨간 점이 찍혀 있는 식탁보를 본 후 눈 앞에 무수한 점들이 뒤덮이는 환영을 경험하게 될 정도였죠.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쿠사마를 어머니는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였던 일본에서 여자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행동이었죠. 억압적인 통제로 인해 심리적 불안이 날로 심해지던 쿠사마에게 위로를 주던 것은 다름 아닌 집에서 흔하게 보던 ‘호박’ 이었습니다. 

쿠사마는 자신의 뮤즈인 호박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였는데요.


"호박은 애교가 있고,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호박은 나에게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나는 호박 때문에 살아내는 것이다” 


“호박 때문에 살아낸다”는 말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쿠사마에게 있어서 호박은 그저 어릴 때 흔하게 보던 작물이 아닌 자신의 아픈 기억이자 유일하게 위로를 주던 존재였던 것이죠.


시간이 흘러 쿠사마는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 진학하여 일본화를 공부하였지만 당시 서구세계에서 유행하던 아방가르드한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당돌하게 일면식도 없던 유명 여성화가인 조지아 오키프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행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가게 된 뉴욕에는 앤디워홀, 클라스 올든버그 등 백인 남성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본과는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을 겪게 되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환영 속에서 보았던 무한한(infinite) 물방울(polka dot)과 그물 무늬(net)를 자신의 스타일로 확립 시켰고 더 나아가 바디페인팅, 해프닝 패션쇼, 반전시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호주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The Spirits of the Pumpkins Descended into the Heavens" ©Wikimedia Commons


쿠사마는 평면작업 뿐만 아니라 거울방에 전구 혹은 점박이 호박들을 설치하여 끝없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환영을 구현합니다. 관객들이 거울방에 들어서면 쿠사마가 겪고 있는 증상을 마주하며 무한한 점들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말이죠. 


“캔버스에 끝없이 그물망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 바닥 위, 내 몸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쿠사마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드러내며 나름 호평을 받았지만 소수자로서 뉴욕 미술시장을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73년 아버지의 죽음, 정신질환의 심화 등의 이유로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고 몇 년 후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쿠사마는 낮에는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밤에는 병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놀랍게도 쿠사마 야요이를 일본 대표 작가로 선정하게 됩니다. 그녀의 작품은 변함이 없었지만 비로소 세상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죠.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 야요이 쿠사마 조형물  © Patrick Khoury / Paris Secret


지금까지 쿠사마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는데요? 과연 그녀의 인생 어떤 부분이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쿠사마 야요이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여성작가이자 명품 브랜드가 협업하고 싶어하는 작가, 미술관이 전시하고 싶어하는 작가가 되며 전 세계가 그녀의 물방울 무늬의 호박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도가 집중된 이유 세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로는 쿠사마 작품에서는 그녀의 인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작가의 자화상 같은 작품은 그녀가 자신의 약점에 굴복하지 않고 항상 맞서 싸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착란 증상으로 보인 무한한 점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위로를 주던 호박, 이 두 모티프가 그녀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쿠사마의 작품은 스타일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스타일이 확고히 드러나는 작품 사실 미술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쿠사마의 작품은 누가 봐도 쿠사마 작품입니다. 점박이 호박,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작품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작품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아닌 독창성(originality)이 있는 것이죠. 마치 앤디워홀 하면 켐벨숲 캔과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반 고흐하면 노란색이 떠오르듯 유명 작가들은 자신만의 정형화된 스타일이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작가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현재 글로벌 아트마켓은 제 3세계, 흑인, 여성의 작품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쿠사마는 백인 남성이 주류를 이루던 팝아트 시기에 뉴욕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작가입니다. 이 점 또한 작품의 인기 상승 요인 중 하나입니다. 


콜렉터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그녀의 작품을 콜렉팅 하려는 이유 이제는 이해가시나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녀의 작품은 바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당시의 유행에 편승하거나 상업적으로 예쁜 그림이 아닌 그녀의 인생을 동반자처럼 따라다녔던 고통을 미술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당시 동양인이자 여성 작가로서 철저한 소수자였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까지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작가로서 미술을 얼마나 진지하고 처절하게 접근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마치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모습까지 자화상으로 남긴 것처럼 말이죠. 


전 세계 콜렉터들은 바로 작가가 자신의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그 두려움과 고통을 예술작품으로 남겼다는 드라마 같은 인생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 입니다. 


쿠사마 아요이는 아직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불면증이 있어서, 졸다 깨서 작업하기를 반복한다. 내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하나라도 더 현실에 남기는 게 내 일이다. 술과 담배를 할 시간도, 다른 작가들과 만날 시간도 없다. ‘좋은 예술을 만들고 싶다’는 게 오직 내 소망이다. 아직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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