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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MZ Jul 30. 2022

엄마의 장단, 나의 장단

에세이라니 (by. 이유진)


저번 주, 나보다 2살 많은 사촌오빠가 결혼 소식을 전했다. 결혼사진에 찍힌 사촌오빠의 모습을 보니 이게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응당 사촌동생으로서 축하를 건네야겠지만, 사회적으로 이르다고 여겨지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덜컥, 결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속물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신혼집을 어떻게 구한 거지? 돈이 어디서?”


나와 남동생은 신혼집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 머리를 짜내 추리를 했다. 결혼이 어렵다고 악소리를 내는 시대에,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된 건지. 이렇게 나와 동생은 추리 쇼를 하지만, 사촌의 결혼 소식이 들리면, 엄마의 마음에는 소용돌이가 치나 보다. 사촌오빠의 결혼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는 나에게 결혼을 채근했다. “딸, 남자 친구랑은 결혼 얘기 안 해? 딸 이제 결혼할 나이야.”

엄마에게 이런 문자도 받았다. “엄마는 딸 결혼할까 봐 머리도 자르지 않고 기르고 있어요.” 엄마는 반말을 하다가 이따금 저런 식으로 문자로 존댓말을 한다. 교양 있는 척을 하고 싶나 보다 하고 넘기지만 솔직히 의아하긴 하다. 사촌오빠의 결혼 소식에 나의 결혼을 채근하는 이유도 의아함 투성이다. 나와 사촌오빠는 같은 성별도 아니고 경제 수준, 전공, 직업, 성격 아무런 공통점을 공유하지 않는 사이다. 심지어 서로 집안끼리 자그마치 억대(!)의 시금털털한 채무 관계가 있어서 그간 큰 교류도 없는 사이인데, 엄마는 그 먼 곳에서 날아든 결혼 소식에 나를 지지고 볶기로 했나 보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골똘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간 엄마가 서두르는 급한 장단에 맞춰 그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양육자였던 엄마는(물론 나중에는 양육이 아니라 방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나를 통해 채웠다. 또한, 굳이 딸이 몰라도 될 시댁과의 이야기, 남편과의 애정관계, 친척들 간의 채무 관계 등 그 나이에 몰라야 하는 것들을 딸과 엄마는 친구라고, 자신에게는 딸 밖에 없다는 말로 모두 나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엄마의 결혼생활이 불행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바꿔 말하면, 나의 불행한 성장기이기도 했다. 예민했던 청소년기, 가정폭력으로 수시로 경찰이 집에 들락날락거렸다. 이렇게 불행하고 위험했던 결혼생활을 했던 엄마는 왜 나에게 도대체 결혼이라는 것을 하라는 것일까.


여자가 참아야 한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러지 않는다… 그렇게 엄마는 이혼을 하지 않고 아빠와의 가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어리고 경제능력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 가정을 떠나야 했다. 서울로의 대학 진학으로 자연스럽게 나의 독립은 실행되었는데,  그것은 엄마와 가정폭력과의 고리를 뗄 수 있는 매우 값진 성취였다. 혼자여서 너무 좋았고 다시는 한밤 중에 집에 경찰이 올 일이 생기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엄마의 조바심 섞인 장단을 듣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나온 19살 이후부터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장단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대학생 때, 가정폭력을 경험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그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고백한 듯이 마음이 뚫렸다. 동아리에서 MT를 갔을 때의 일이다. 나보다 3살 정도 위의 남자 선배가 자신의 아빠가 엄마를 폭행했던 경험을 담담히 털어놓는데, 나도 덜컥, 마음이 놓였다. 나는 그 선배에게 위로하는 눈빛을 보내며 연기를 했지만, 그 위로는 사실 부친의 폭행이 남았던 현장을 뒤로하고 학교에 가야 했던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원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결혼을 하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긍정적일 수 없다고 한다. 나 또한 원가족에서 긍정적이지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누가 결혼하건 말건 세상은 여름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나의 자취방도 나도 온몸에서 여름색을 내뿜고 있다. 이번 여름도 혼자인 나와 잘 지내볼 것이다. 나는 내가 결혼할지 전혀 궁금하지 않고, 내가 어떤 생각을 펼쳐나갈지 궁금하고, 어떤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일지 궁금하다.

여름의 결혼식을 하게 될 사촌오빠의 결혼식은 쨍쨍한 여름 햇살이 지면, 엄마의 신세한탄 무대로 바뀔 것이다. 식 끝나자마자 냉큼 와야지, 하는 결심을 해본다. 남동생은 잔소리 듣기 싫어서 엄마랑 집에 따로 가려고 KTX 표를 끊었다고 하는데, 나도 도망가야겠다. 이 도망은 엄마의 장단 대신 나의 장단에 더 귀 기울이기 위한 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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