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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현 Jul 25. 2023

실업급여로 삶을 즐겼습니다

실업이라는 절망 속에서 희망 찾기



시럽급여’라는 말을 들으면서 오래 전 실업급여를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10여 년 전 온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면서 나는 실업급여를 받았다. 고용보험을 20년 가까이 냈지만 실업급여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실업급여 덕분에 낯선 곳에서 앞으로 할 일을 탐색하고, 가족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개혁위원회가 지난 7월 12일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비꼬았다. 고용보험센터 실업급여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용보험이 생겼던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그리고 해외 여행 간다. 샤넬 선글라스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삶을 즐겼다. 가족과 함께 했다. 그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세 가지다.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하는 텃밭을 했다. 아내의 자연 출산에 함께 했고, 산후조리를 올곧이 내가 책임졌다. 마지막으로 제주 곳곳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했다.     


실업급여 덕분에 낯선 곳에서 일자리도 찾았다. 한살림 텃밭에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됐다. 한 살림에서 일을 하게 된 것. 2년 간 일했다. 짧게 일했지만 자연과 농업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첫째 윤슬이는 텃밭과 함께 자랐다. 텃밭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 5살이었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면 텃밭에 가자고 졸랐다. 아예 어린이집에 이야기해 텃밭으로 하원 시키는 날도 많았다. 토마토가 열리고, 수박이 열리고, 가지가 열리고, 호박이 열렸다. 윤슬이는 “아빠 신기해. 아기 열매가 열렸어”라고 신나했다. 가지, 호박, 토마토, 옥수수를 따고는 또봇 장난감을 얻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나는 그런 윤슬이가 신기했다.      




텃밭을 하면서 얻는 선물이 많았다. 건강한 먹거리는 기본이다. 아이도 텃밭과 함께 성장한다. 마트에서 상품으로만 만나는 먹거리와 직접 키워 수확해서 먹는 채소와 과일은 분명히 다르다. 사람의 노동과 흙, 햇살, 바람이 만나서 먹거리가 만들어진다. 이 자체가 소중한 배움이다. 윤슬이는 겨울 마트에 있는 수박을 보고는 “이거 제철에 나오는 게 아니지”라면서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손발을 놀려 일을 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경험은 아이들 성장과정에 중요한 경험이다. 윤슬이에게 텃밭은 일과 놀이의 중간단계였다. 우리 가족은 텃밭에서 잘 일하고, 잘 놀고, 잘 먹었다. 실업급여 덕분에 생긴 일이었다. 제주살이 8년 첫 출발을 실업급여가 있었기 때문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      


누구의 눈으로 본다면 나는 ‘시럽급여’를 받는 사람일 수 있다. 결국은 일자리와 연결됐지만, 구직과 크게 연관 없어 보이는 일들을 했다 ‘텃밭’을 하고, 아내 산후조리를 책임졌다.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제주 자연을 만끽했다.


고용보험센터 실업급여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 “고용보험이 생겼던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 분들”. 이 말속에 한국 사회보험 제도의 특징이 녹아 들어가 있다.      

권위주의적인 산업화 시기 국가의 모든 자원은 성장에 집중되었으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영역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복지제도의 도입이 이뤄졌다. 발전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보험 중심의 소득보장제도 도입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국가의 재원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사회보험 중심으로 제도가 도입되었다. 정부의 낮은 재정 투입 능력과 기업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여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었다. 둘째, 중화학공업,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체제 하에서, 핵심 생산계층인 (남성) 숙련노동자의 보호와 재생산을 위해 사회보험을 적용하는 ‘선별적 탈상품화’가 나타났다. (윤홍식 외. 우리는 복지국가로 간다. 2020)      


그렇다. 고용보험이 태어난 이유가 ‘그런 남자분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생겨났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OECD 2022 한국경제보고서’를 실업급여 개편의 근거로 든다. OECD는 “한국 고용보험의 약점은 낮은 포괄범위”라며 “고용보험의 적용범위 확대”를 권고했다. 노동부가 지난 6월에 내놓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94%대인 반면 비정규직은 80.7%에 그치고 건설노동자 등 일일근로자의 경우엔 66.4%까지 떨어진다.      


또 OECD는 “한국에선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실업이 발생하고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고용보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주장에 인용한 ‘역전현상’과 관련해서도 OECD는 “고용보험의 하한액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제한해라”면서도 “동시에 국제 기준상 비교적 짧은 실업급여의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고려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OECD가 ‘실업급여 기간을 연장’을 강조한 대목은 쏙 빼고, 당정 입맞에 맞는 권고만 골라 ‘선택적 주장’을 한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대기업, 남성, 숙련노동자 보호에서 광범위한 불안정,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들 저소득층 노동자를 비하하면서 우리나라 사회보장 제도의 확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런데 꼬였다. 무조건 때리기에만 나선 탓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사고쳤다’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는 9월 3일 언론보도 설명 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보장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등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지 않으며, 보장성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노사정 대타협(’15.9.) 등 오랜 사회적 논의의 결과임”. 오랜 사회적 논의의 결과를 ‘저소득층 노동자 혐오’로 송두리째 흔들려고 했지만. 국민들과 당사자들의 반발만 샀다.      


최저임금의 80%라는 실업급여 하한액은 실업자라도 최소한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올해 최저임금의 80%는 월 185만원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을 이마저도 깎거나 없애려고 한다. 하한액을 폐지하면 최저임금만 받는 노동자는 월 120만원 수준의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실업급여가 노동자가 실직 전 받은 평균 임금의 60%이기 때문이다. 이 돈으로는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실업급여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실업자들을 계속 질 나쁜 일자리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실업급여는 수년간 지불한 돈에 대한 실업자의 권리다. 회사가 해고해서 받는 돈을 ‘시럽급여’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들의 공분만 일으킬 뿐이다.      


불안은 영혼을 좀 먹는다. 실업자의 밝은 표정이 문제라는 발상이 문제다. 실업급여를 받을 때 나는 웃었다. 그 힘으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던 제주라는 섬에서 관계를 만들었다. 그 관계가 이후 일자리를 만드는 힘이 됐다. 웃는 것은 부정수급의 증거가 아니다. 실업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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