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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25. 2024

3일마다 20장씩 쓰던 욕실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평소 나의 아침 일과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욕실 앞에 놓아둔 빨래 바구니 안에 가득 쌓인 빨래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빨래 바구니는 제법 큰 편인데도 5인 가족이 날마다 내놓는 옷가지와 수건을 담아내기엔 부족한 날이 많다. 나는 세탁물을 밝은 색깔의 옷과 속옷, 어두운 색깔의 옷과 양말, 수건,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 하루에 한 번 세탁기를 돌린다. 집안 청소는 하루 거를 수 있어도 빨래는 절대 거를 수 없다.


우리 집 빨래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건 수건이다. 하루에 다섯 장 이상의 수건이 빨래 바구니에 넣어지고 3일이면 거의 20장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지면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기도 해서 수건의 양은 더 늘어난다.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래거리


얼마 전에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보고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수건 쓰지 말고 스포츠타월 써볼까?"

"스포츠타월? 그건 수영장에서나 쓰는 거잖아."

"수건을 매번 세탁한다는 게 너무 낭비인 거 같지 않아?"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수건을 세탁하는 건 더러워서라기보다 냄새가 나기 때문인 것 같다. 수건은 물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세탁 시 다른 빨래들보다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가고, 또 그 많은 물을 흡수한 수건을 건조하기 위해 너무 많은 양의 전기를 쓴다. 우리 집은 빨래를 널 공간이 마땅치 않아 건조기를 사용하는데, 수건을 건조할 때 보면 일반 옷들보다 건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이건 분명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좋아. 빨래도 줄고 환경 보호도 되고,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스포츠타월을 집에서 쓴다는 게 생소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장점이 많을 것 같아 남편의 의견에 찬성을 했다.


우리는 그 즉시 스포츠타월을 주문했다. 주문하면서 보니 최근 일부 스포츠타월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가 고른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해 보고, 가족 수에 맞춰 5장을 주문했다.


면수건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스포츠타월


스포츠타월을 써 본 결과, 나는 대만족이다. 면수건을 썼을 때처럼 보송보송하게 닦이지는 않지만 물기를 제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샤워를 마치고 스포츠타월을 한 번 헹궈 꾹 짠 다음 몸에 살짝 붙였다 떼는 식으로 물기를 닦아준다. 스포츠타월은 말리면 마치 다시마처럼 딱딱해지는데, 마르는 과정에서 구부러지고 달라붙은 걸 억지로 떼내려 하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물에 적셔서 쓰면 된다.


"스포츠타월 써 보니까 어때?"

일주일쯤 면수건 대신 스포츠타월을 쓰고 나서 남편이 내게 물었다.

"빨래가 확실히 줄었어. 정말 좋아. 물기 짜느라 손목이 좀 아프긴 한데 환경보호 운동에 손목 하나 바친다고 생각하지 뭐."

"그래, 우리가 지구를 구하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생겼고, 그만큼 물과 세제, 전기 사용량을 줄이게 됐으니 우리가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2주 넘게 스포츠타월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초4 딸아이가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고 들어와서는 투덜거렸다.

"엄마, 공원에 사랑벌레 엄청 많아. 계속 달라붙어서 너무 싫어. 사랑벌레가 왜 이렇게 많은 줄 알아? 지구 온난화 때문이래."


사랑벌레(붉은등우단털파리, 러브버그)는 2022년 6월경 우리 동네인 은평구에 나타나기 시작한 벌레이다. 원래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곤충이었으나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서도 서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은평구에만 집중됐었으나 올해는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처음 사랑벌레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주차장에 세워둔 하얀색 차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벌레떼를 보고 놀라면서부터다. 벌레들은 창문 틈을 타고 집안까지 들어왔다. 사랑벌레는 질병을 옮기지 않고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익충이라고는 하지만, 몸에 달라붙고 집안까지 들어오면 혐오감과 함께 스트레스를 주니 달갑지 않다.


쌍으로 붙어 다니며 종일 짝짓기를 하는 사랑벌레


"지구 온난화 정말 싫다. 우리스포츠타월 쓰는 지구 온난화가 되지 않게 하는 하나라는 거 알지? 우리가 지구를 구하는 거야!"

딸에게 '엄지 척'을 해주고, 스포츠타월 한 장을 들려 욕실로 보냈다. 빨래를 줄여보려고 시작한 스포츠타월 사용은 어느새 우리 가족이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변해 있었다.


요즘 6월이라고 하기엔 너무 더운 날씨를 느끼며, 지구가 더워지다 못해 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다. 스포츠타월을 쓰면서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 외에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분리수거를 잘하는 등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실천해야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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