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하다가 매주 목요일마다 출근을 한다. 여덟 시 이십 분쯤 집을 나와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간다.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갈 때면 반대편에서 학교를 향해 걸어오는 조금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의 젊은 남자와 마주치곤 한다. 그가 바로 앞쪽에서 걸어올 경우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인사하지만, 약간 사선 쪽이거나 그가 나를 못 본 것 같으면 살짝 고개를 돌려 못 본 척 지나치기도 한다. 얼굴은 알지만 매번 인사하기 어색한 그는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이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 때 선생님을 뵌 이후로 출근길에 선생님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사람을 한 번 보고 딱 알아보는 편이 아닌데 선생님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그건 그의 특이한 옷차림 때문이다. 어떤 날은 치마인가 싶을 정도의 통 넓은 바지에 스웨터 차림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청바지에 개량한복 저고리를 입기도 했다. 그것도 빨간 잔꽃무늬가 가득 그려진, 마치 여자 것 같은 저고리를 말이다.
선생님의 의상이 유독 눈에 띈 날 저녁이면 딸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너희 선생님 의상이 좀 특이하지 않았니?"
그러면 딸아이는
"어... 그래? 난 모르겠는데."
혹은
"우리 선생님 원래 그래."
라고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다는 듯 대답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워낙 옷 입는 거에 무심한 성격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 선생님을 마주하고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면서 내가 선생님의 옷차림을 특이하게 본 건 다 내 고정관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어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나한테는 있었고, 딸아이한테는 그런 게 없었던 듯하다.
선생님답게, 학생답게, 나이에 맞게... 나한테는 어떤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한 고정관념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가 되면서 내 취향과는 상관없이 나이에 맞게 중년여성브랜드에서 단정해 보이는 옷을 사 입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예뻐 보이는 옷을 들었다가도 내 나이에 입기에는 주책맞아 보일 것 같다며 내려놓기 일쑤였다. 내 취향은 프릴, 레이스, 리본, 독특한 디자인과 컬러의 배합,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옷들인데... 난 왜 그걸 못 입고 살지?
선생님이 빨간 잔꽃무늬가 가득 그려진 예쁜 저고리를 입은 걸 본 날 저녁에 나는 딸아이한테 이렇게 말했어야 솔직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너희 담임선생님이 입은 한복 저고리 너무 예쁘더라. 엄마도 하나 사 입고 싶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함과 동시에 내 취향도 존중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