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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모자가 바다에 빠진 덕분에 생긴 일

by 윤아람

언니랑 정동진 여행 갔던 이야기(내평생 가장 잘 먹고 잘 쉰 2박 3일)를 쓰다 보니 6월에 그곳에 갔을 때 있었던 재미난 일이 생각나 늦었지만 글을 써본다.


지난 6월에 친정엄마가 다니는 수영장이 공사를 해서 쉬게 된 김에 딸들과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드리고자 여행을 계획했다. 약간은 까다로운 편인 엄마를 만족시킬 만한 장소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검증된 곳이 낫겠지 싶어 작년에 가족들과 갔던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로 장소를 정했다.


호텔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할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이 푸른 바다와 하늘,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바다 위로 다리를 놓고 데크를 깔아 만들어 놓은 산책로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바람이 세게 휘익 불어와 내 모자를 벗겼다. 저 앞쪽에 살포시 떨어진 모자에 다가가 허리 숙여 집으려는 순간, 더 센 바람이 불면서 모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어, 어, 하며 허둥지둥 모자를 쫓았지만 바람이 더 잽싸게 모자를 날려버렸다.


허공에서 춤을 추던 모자는 결국 바다 위로 떨어졌고, 바닷물을 품에 앉은 채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이 맑아 내가 서 있는 산책로에서 내려다보면 모자가 보였다.

"별로 깊지 않을 것 같아. 들어가서 꺼낼 수 있지 않을까?"

"흘러가 버리지 않을까?"

"힘들겠지... 그냥 포기하자."

이 산책로 초입에 모자를 빠트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산책로를 다 돌고 다시 그 자리에 와서 아래를 보니 예상과 달리 모자는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눈엔 그 모습이 마치, '날 두고 가지 마.'라며 애원하는 듯했다. 그 모자는 작년 가을에 처음 라운딩을 갈 때 산 모자로,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봄 내내 가벼운 외출 시 쓰고 다니며 나름 정이 든 모자였다.


그대로 두고 가면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물이 별로 깊지 않을 것 같으니 들어가서 건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처 모터보트 타는 곳으로 가서 물었다.

"제가 저기 산책로 아래 모자를 떨어트렸는데요. 저 앞쪽에 하얀 거 보이시죠. 혹시 저기가 많이 깊을 까요?"

물이 어찌나 맑은지 모래사장에서도 하얀 모자가 가라앉아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아, 저기요? 여자분이 들어가면 아마 허리 정도 될 거예요. 보트 타세요. 보트 타면 모자도 꺼내드릴게."

아, 그렇게 좋은 방법이!


내 모자는 3만 원, 모터보트 타는 비용은 5만 원이었다. 엄마가 "그 모자 비싼 거니? 엄마가 하나 사줄게. 그거 꺼내자고 보트를 타?"라고 했지만, 내게 이 모자는 그저 3만 원짜리 모자가 아니었다. 정이 든 모자고, 난 그걸 여기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를 태운 조정사님이 천천히 모자가 빠진 곳으로 보트를 몰고 갔다. 혹시라도 엔진이 돌에 걸리면 보트가 망가질 텐데... 가는 중에 파도가 쳐 모자가 휩쓸려 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심조심 살금살금... 그렇게 모자 앞으로 다가가 보트 안에 있던 꼬챙이로 모자를 무사히 건져 올렸다.

"와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만난 모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모자를 꺼내지 않았다면 수영장에서도 괴로울 뻔.


이제 조금 깊은 바다로 나아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꽉 잡으세요."

모터보트가 하늘을 날듯 파도 위를 튕기면서 바닷물이 온몸을 적시자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빙글빙글 뱅글뱅글 정신없이 바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처음 그 자리 모래사장에 내렸다.

"정말 재밌었어."

하마터면 이 재미난 걸 놓칠 뻔했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 딸아이가 가장 재밌었다고 말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바람이 우리가 너무 재미없어 보여 내 모자를 벗기며 장난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 뭐해요, 더 재미나게 놀아봐요.'라고.


모자가 바다에 빠진 덕분에 타게 된 모터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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