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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언니 생일선물로 본 뮤지컬 킹키부츠

by 윤아람

지난 주말(11월 1일 토요일) 오후에 언니랑 뮤지컬 <킹키부츠>를 관람했다. 9월 말이 언니의 생일이었는데 딱히 갖고 게 없다고 하길래, "그럼 뮤지컬 보러 가자."라며 반강제로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 티켓을 사버렸다. 나는 언니의 생일에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 티켓을 선물하는 약간 이기적인 동생이다.


생일선물로 사는 거니까 아무 자리에나 앉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사고 싶었다. 처음 티켓을 오픈한 시점에는 1층 사이드 쪽 좌석밖에 없었다. 나는 하루이틀 뒤에 나오는 취소표를 공략하기로 했다. 언제 좋은 자리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자주 예매 화면을 들여다봐야 했다. 낮에도 몇 번씩, 밤에 자다가도, 새벽에도 잠을 설치며 이틀을 부지런히 들락거린 끝에 드디어! 맨 앞자리 중앙에 가까운 좌석 두장을 예매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반이 지나 공연 관람일이 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양아람누리 극장 도착. 맨 앞자리는 배우의 표정은 물론이고 발목에 난 양말자국까지 다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보였다. 단점이라면 무대 전체가 한눈에 안 들어와 고개를 계속 좌우로 돌려야 했다는 거 정도.


킹키부츠의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망하기 직전의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드래그퀸(여장 남성 연기자) 롤라를 만나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가볍고 유쾌한 쇼뮤지컬이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것.


전체 넘버를 예전에 유명했던 팝가수 신디로퍼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한 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멜로디여서 좋았다. 모든 배우의 연기가 좋았지만 특히 롤라역을 맡은 강홍석배우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롤라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롤라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전에 맘마미아를 볼 때는 극의 분위기에 비해 객석의 분위기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킹키부츠는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이 많아서인지 중간에 박수와 환호가 끝없이 나왔다. 커튼콜 때는 일어서서 소리 지르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스트레스도 날려버리고, 흠잡을 데 없이 너무너무 좋은 공연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내가 왜 이걸 이제야 봤을까, 정도.


언니도 공연을 보는 내내 웃었고 끝난 뒤에도 매우 즐거워 보였다.

"동생, 좋은 공연 보여줘서 고마워."

언니의 표정을 보니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동생은 아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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