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그 방학
방학
어릴 땐 말만 들어도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집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보내며 방학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걸 아까워했다. 모든 아이에게 방학은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에게 방학은 공평하지 못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는 방학이라고 집에 있을 수가 없다. 초등 저학년 시기 까지는 그렇다.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집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일터에 있는 동안 아이도 학기중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맡겨져 있어야 한다.
다행히 초등학교 첫 3년 동안 돌봄 센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3학년 때는 아슬아슬하게 뽑기로 당첨되었다. 방학에도 아침 9시부터 갈 곳이, 점심밥과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오후 학원에 다녀온 뒤에 부모를 기다리며 보호받을 곳이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돌봄 센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면?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2학년 때 아이가 전학을 하면서 돌봄 신청을 놓친 적이 있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찾아다녔지만 받아줄 곳이 없었다.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제대로 겪었다. 돌봄의 부재에 나는 극도로 불안했고 분노마저 들었다.
다행히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학교 돌봄이 아닌 지역 돌봄 센터가 개설되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르겠다.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워킹맘은 그제야 커다란 시름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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