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퇴사는
휴직을 하고서 휴대폰의 회사 이메일, 메신저에서 로그아웃했다. '나를 찾지 마세요.'만은 아니었다. 단체로 공지되는 일들의 수많은 알람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대신 PC로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고 게시판, 경조사 알림 등을 살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한 달 씩을 훌쩍 넘기는 등 점점 주기가 길어졌다.
회사 이메일을 체크하는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올 수도 있어서였다. 내가 휴직한 줄 모르는 타 부서 동료가 찾을 수도 있고, 벌려놓거나 매듭지었던 업무 중 무언가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그중에는 미처 열어보기도 전에 중간에서 다른 동료의 손길에 의해 이미 해결된 일도 있었다. 내 실험 데이터를 찾아서 타 부서의 문의 메일에 대응해 준 동료의 메일을 보며 참 고맙고 또 미안했다. 내가 먼저 알았더라도 데이터는 모두 회사에 있어서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찾아서 살피고 전달하는 것은 그 동료에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 수고 덕분에 나의 부재가 우리 팀 업무의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멀리서 열심히 머릿속 데이터를 뒤적이며 당황하는 일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고 말이다.
또한 회사 이메일을 훑다 보면 각종 공지사항, 크고 작은 이슈들, 목표 설정이나 성과 공유 등 각 분기의 일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올린 보고서, 출장, 학회 소식, 회사의 메시지 등등 반복되는 비슷한 흐름을 보며 '여전하구나.'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회사에 있어도, 회사를 떠나도, 회사라는 존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글쎄, 딱히 무언가 변하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전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즐거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 목록을 연속적으로 채운 비슷한 제목들을 발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알고 있었다. 회사에 희망퇴직 신청이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미처 다 알지 못했었다. 누가 떠나는지.
하나하나 메일을 열며 이 글을 썼을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놀랐고 슬펐다. 생각지 못한 작별에 놀랐고, 다시 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슬펐다. 그리고 이내 더 슬퍼졌다. 휴직한 바람에 그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해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너무 아쉽다고, 앞으로의 일들을 응원한다고 전하지 못해서.
그렇게 아쉬우면 회사 밖에서라도 만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일로 만나 관계를 맺어온 사이는 어쩐지 사적으로 만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매일 보며 친분을 쌓았던 사이여도 따로 약속을 잡는다는 건, 그것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건 생각만큼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회사를 떠난다는 건 곧 작별인 것이다. 건너 건너 소식을 전해 들을지언정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것처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이제 영영 이별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 동료들이 보낸 퇴사 메일 앞에 나는 홀로 조용히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마주 보며 즐거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휴직한 게 처음으로 아쉬웠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모일 회, 모일 사. 회사로 모여들고, 회사로 인해 만나고, 회사일을 하며 많은 표정과 말들을 나눈 우리들. 회사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었다. 그 건물에 단지 일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었다. 모여든 우리들이 연결되고 맞물리며 협력해 일을 했다. 그리고 정을 나눴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일 뿐 아니라 사람 역시 떠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6개월의 휴직을 하며 회사에서 놓친 순간들이 많다. 이메일로 팔로우업을 한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영영 놓쳐버린 그런 순간들도 있다. 회사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갔지만(너무나 당연하게도), 나 역시 회사 없이 너무나 잘 지냈지만(수입 빼고는 이 또한 너무나 당연), 내가 회사에 없던 시간을 PC 화면으로만 마주한다는 건 때론 그 간극이 무척 크게 다가오는 일이다.
이 경험이 나를 더 애틋하게 해 주면 좋겠다. 복직해서 다시 만난 동료들을 더욱 반가워하고, 매일 만날 수 있음에, 혹은 언제든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마주한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때론 딱딱한 분위기 속에 마주하게 되더라도 이 애틋함을 떠올리면 조금 말랑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엔 다시 깨닫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여든 우리의 인연을, 이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는 공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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