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소중해
이제 정말 마지막 육아 휴직. 오늘을 포함해 3일이 남았다. 남은 휴직을 세기 시작한 시점은 휴직이 절반쯤 지났을 때부터였다.
‘벌써 반이나 썼네?’
‘아직 반이나 남았네?’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시소처럼 움직였다. 이후의 시간은 남은 것이 더 작고, 점점 더 작아진 다는 건 팩트. 그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건 나의 주관적 느낌.
휴직의 중간인 1월에 말레이시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왔다. 2월에도 내내 겨울방학이어서 아이와 밀착 기간을 가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휴직이 한 달 반 남아있었다. 두 달 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눈 깜짝하면 금세 한 달만 남을 그런 시간처럼 느껴졌다.
‘남은 휴직을 알차게 보낼 거야. 아니 격렬히 누릴 거야!’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평일 낮, 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가있는 동안은 남편과 스케줄 조정 할 필요 없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듣고 싶었던 작가님의 북토크를 신청해서 가고, 보고 싶었던 회사 동기를 회사 밖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글쓰기 모임의 오프라인 번개도 제법 가졌다. 서울도 여러 차례 갔다. 반가운이 와 전시회 데이트도 하고, 오랜 친구들을 무척 오랜만에 만나 웃음 짓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가 오후에 바로 에버랜드에 가기도 했다. 포항 벚꽃, 서울 벚꽃, 용인 벚꽃을 차례로 즐기며 그 어느 해보다 긴 벚꽃 기간을 가졌다. 내일모레에는 또 한 차례의 벚꽃 놀이가 기다리고 있다. 아, 헬스 PT도 한 달 동안 열심히 받으며 삶에 근력 운동이라는 걸 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문득 보고 싶은 드라마를 이틀 사이 몰아서 보기도 했다.
가고 싶은 행사에 참석해서 좋았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전시회도 여러 번 가며 새로운 감각을 깨워서 좋았다. 가족들과 봄나들이를 가고 가고 또 가서 좋았다. 시간의 제약 없이 운동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않고 해내는, 높아진 나의 자유도가 좋았다.
하지만 이 많은 알참과 즐김 속에 내가 가장 공들여한 일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바로 지금, 카페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말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쩌다 시간이 나면 고민 없이 카페로 향했다. 아이 학원 픽업 가기 전 30분이라도 짬이 나거나, 토요일에 아이를 미술 학원에 데려다준 그 틈새의 한 시간을 나는 카페에서 보냈다. 휴직이 한 달 남짓 남은 때부터 다이어리 속 이번 주의 [로망] 계획에는 매번 ‘카페 독서’, ‘카페 글쓰기’가 쓰였다. 이것은 나의 로망이다. 남은 휴직 3일 동안 매일매일 하고 싶은 원픽이다.
‘오늘은 어느 카페에서 시간을 가질까?’
행복한 고민이다. 좋아하는 장소 중에서 고르기도 했지만, 이사 온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근교에 가보지 못한 카페를 새로 발굴하는 재미도 있었다. 10분만 차를 타고 나가도 금세 교외 풍경이 펼쳐지고 곳곳에는 빵이 맛있는 카페들이 여럿 있다. 애정하는 동네 책방이 마침 라운지(카페)를 오픈해서 그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며 작업에 몰입하기도 했다. 한 시간의 타이트한 짬이 아닌 제법 커다란 덩어리 시간을 가지며 말이다. 한 편의 글 만 쓰기에도 빠듯하던 시간 대신 독서로 예열하고 이어서 내 글을 쓰는 깊은 만족의 시간을.
생각할수록 참 소박하기 그지없다. 손에 꼽히는 남은 휴직 기간 동안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동네 카페를 다니며 글을 쓰는 게 로망이라니. 그게 최고라니. 그런가 보다. 나에게는 이 일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인가 보다. 화려한 무언가로 채우기보다 하루하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으로 채우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는 것. 그게 내가 가장 바라는 휴직의 마지막 그림인가 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은 요즘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 보면, 원래 하루란 매일이란 삶이란 소중한 것이다. 휴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소중함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며 생생히 느끼는 이유는 휴직이라는 한정된 기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보면 그 어떤 기간도 무한하지 않다. 다시 말해 삶은 유한하고, 하루하루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소중하다.
이제 결론에 이른다. 내가 격렬히 누려야 할 것은 비단 이 휴직만이 아니라는 것을. 혼자 꾸려가는 시간의 자유도는 줄어들겠지만 다른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 속에서 소중한 나의 하루를 경험과 감정으로 채우며 온전히 누려야겠다고.
휴직이 저물어가는 지금, 문득 삶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