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얼굴 좋아지셨어요."
복직 첫날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마냥 수줍게 받다가, 나중에는
"이게 오래가야 할 텐데 말이죠."
하며 유머로 화답하기도 했다.
6개월의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감사하게도 여러 사람들이 반겨주었고, 일이 이만~큼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웃음 한가득 안겨준 동료도 있었다. 휴직은 어땠냐며,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는 어땠냐며, 책은 어떻게 되고 있냐며 다정한 안부를 물어주기도 했다.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자 이제 좀 적응되었냐고 물어주기도 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밥 한번 먹자며 매일 같이 점심 약속이 잡혔다. 다정하고 화기애애한 사람들. 역시 사람들이다. 직장 생활의 절반 이상은 사람이고, 나는 이들이 제법 좋다.
그런데 말이다, 어딘가 불편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나는 소진되어 있었다. 모든 순간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는 게 몹시 피곤하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 있는 시간 내내 나는 계속 타인과 함께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인사를 나누고, 커피 머신 앞에서도 누군가를 마주치게 된다. 사무실과 실험실을 여러 차례 오가는 복도에서도, 업무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사람을 대하게 된다. 물론 일하는 동안 말없이 PC 작업을 하거나 실험을 하는 시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앞, 뒤, 옆 어디에나 누군가가 있다. 행동 하나, 말 한마디, 나의 움직임과 소리 하나하나가 타인에게 닿는다는 게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 있을 때도 앞뒤 동료와 담소를 나누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대화거리에 대해 생각하며 부지런히 밥을 먹어야 한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을 때도 거울 속에 여러 동료들이 함께 담겨있다.
불편하다. 싫은 건 아닌데 편하지가 않다. 휴직 기간 동안 집에서 너무 편하게 있었나 보다. 아무도 없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냈나 보다. 그 시간이 내게 안정을 주었나 보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인가 보다.
사실 나는 원래 그런 성향이다. 사람을 마주하는 걸 무척 반가워하고 그 순간 에너지를 흠뻑 쏟으며 즐거워하지만, 돌아서면 어딘가 진이 빠져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충전이 된다. 그래도 예전에는 에너지를 한껏 끌어올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즐겼다. 어떠면에서는 애쓰기도 했다. 그런데 반년을 쉬고 돌아온 나는 갑자기 이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애쓰기가 싫어졌다. 나 자신에게 좋고 싫음이 분명해진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이상해서 남편에게 말해봤다. 그의 입에서 바로 진단이 나왔다.
"사회성!"
맞다, 사회성. 그것이었다. 사회성이 없어졌다기보다 사회성을 갖출 의지가 줄어든 것이다. 내가 애써야 할 노력만 신경 쓰는 대신 그로 인해 생기는 피로감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과 모든 순간을 다 잘 지내려고 애쓰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다. 회사 생활 15년 차에서야 비로소.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생활은 역시 피곤하고 버거워.'
하며 피해야 할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 속에 있는 내가 예전보다 가벼워지고 편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함께 하면서 덜 소진되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혼자 있으면서 밸런스를 잡고 싶은 것이다.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일단 떠오르는 건 너무 많은 생각을 짊어지지 말자는 것이다. 마주한 상대와의 대화를 빈틈없이 채우기 위해 머릿속을 바삐 움직이는 것을 내려놓아야겠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겠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내가 마주한 일에 몰입하되 숨 쉬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 숨! 의식적으로 한번씩 큰 호흡을 해야겠다.
하마터면 커다란 오해를 할 뻔했다. 내가 이들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닌가 하고. 그게 아니어서, 아니라는 걸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내가 피하고 싶은 건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소진해 가면서까지 애쓰는 내 모습인 것이다. '나를 지켜야 관계도 지켜지겠구나.'
이게 내가 회사 생활 15년 차, 6개월 만에 복직해 깨닫게 된 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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