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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Jan 11. 2024

여행자의 자기 계발

아니, 로망 실현

나트랑 Day6


이번 베트남 한 달 살기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달려있다. 두 달이라는 아이의 긴 겨울 방학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것, 해외 경험을 시켜주고 (나도 하고)싶은 것, 외국인 친구들과 학교 다니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남은 육아휴직을 내고 한 달 살기를 하러 가겠다는 내게 많은 이들은 물었다. "너는 가서 뭐 할 건데?" 나의 대답은 요가와 영어였다. 그리고 그 행간에는 다른 많은 일들이 숨어있다.


아침에 아이를 현지 학교에 보낸 뒤 첫 일정은 요가 클래스 참여이다. 다행히 이곳에서 만난 몇 엄마들과 근처 요가원에 다니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난해부터 시작한 요가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하게 되었다. 비록 몸은 심히 타이트해서 잘 구부러지지 않을지언정 마음만은 요가에 진심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그 루틴을 이어가고 싶었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요가 클래스라니! 너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오늘 아침 나는 베트남 선생님의 영어 디렉션 아래 수련의 시간을 가졌다. 반 야외와 같은 공간에서 몇 가지 동작을 이어가다 보니 금세 땀이 났다. 이렇게 흠뻑 땀을 흘려본 게 얼마만인지! 그 시간은 그냥 모든 게 뿌듯했다. 척척 알아들을 때 뿌듯했고, 요가를 배우던 터라 동작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뿌듯했다. 짧게나마 근력이라는 걸 느낄 때마다 점점 튼튼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해외 한 달 살기 하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클래스를 찾아 (심지어 개설을 요청하여) 수련을 이어가는 게 몹시도 보람찼다. 그렇게 오늘도 나마스테 샨티 샨티이로 마무리하며 몸과 마음을 채웠다.


오늘은 요가뿐 아니라 하나의 클래스가 더 있다. 오후에 있을 영어 클래스가 그 첫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가와 영어 사이 남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설레며 고민했다. 나의 로망을 실현하는 시간! 패드와 키보드를 챙겨 들고 멋진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찾았다. 숲 속 트리하우스에 온 듯 한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점심 메뉴와 커피를 주문했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소리로 베트남을 느끼다 보니 눈앞에 맛있는 한 상이 차려졌다. 이곳 바게트는 속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커피는 또 얼마나 눈과 입이 즐거운지!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따사로운 런치를 즐겼다. 이상하게도 해외에서는 이렇게 혼자 먹는 게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상에 젖으며 먹게 된다.



그렇게 여유로운 식사를 마친 뒤 커피와 함께 패드를 세팅한다. 밀리의 서재로 읽고 있는 소설을 펼친다. 마음을 잡아 끄는 문장에 줄을 쳐가며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다시 눈앞에는 카페 테라스에 가득한 나무와 주변 오토바이 소리, 사람들 소리가 들려온다. 꿈에서 깨어난 느낌, 시공간을 들락날락하는 그런 느낌. 나에게 익숙한 세상은 소설 속 세상인지 아니면 지금 눈앞의 타국인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묘한 경계에 서 있었다. 


지금 이 느낌을 붙잡아야 해! 메모장을 열어 짧은 글을 썼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한 바퀴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것은 고심을 거친 단어와 편집, 현지 소리와 음악을 담아 나만의 콘텐츠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한 번씩 나름의 감성 릴스를 올린다. 써 놓은 시가 그것이 될 때도 있고, 콘텐츠로 만들다 보니 거꾸로 시가 써질 때도 있다. 오늘은 그 두 가지 작업이 양손을 오갔다. 이곳에서 만든 첫 릴스! 바삐 러프하게 만들었지만 그 처음을 시작했다는 것이 또 세상 뿌듯한 순간이었다. 


사실 이번 베트남 한 달 살기 동안 글, 시, 감성 릴스 작업을 충만히 해내고 싶었다. 여유로운 시간과 외국이라는 조합은 그동안과 다른 영감을 이끌어낼 좋은 조합이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여유롭지 못했고 적응하느라, 아이의 적응을 돕느라 많은 에너지를 썼다. '영감을 얻어야 해!'라는 처음 가져보는 압박만 느낀 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만으로는 그 어떤 알맹이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것이라 짐작해 본 적은 있지만 스스로에게 영감을 요구해 보기도 처음이어서 이렇게 몸소 체험한 뒤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이 시간을 낭만으로 채우겠어' 라며 좋아하는 환경에 나를 놓아 두니 이렇게 불쑥 새로운 생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역시 지금 내가 집중하고 싶어 하는 이 일들은 억지로 끌고 갈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어딘가에 스스로를 풀어놓고 흘러가는 모습을 두고 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우연에 맡겨보는, 하지만 순간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붙잡는 시간이랄까!


영감을 마주한 순간을 이야기하다 보니 또 이렇게 감상에 빠져 글이 길어졌다. 카페에서 서둘러 시계를 보고 짐을 챙겨 나오듯, 글을 쓰는 지금 서둘러 화제를 전환해 본다. 그렇다, 내게는 오후에 영어 일대일 레슨이 있었다. 


영어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영어로 말하는 나라가 좋고, 영어로 말하는 드라마가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언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내 입과 귀는 영 따라가 주지 못하고 있다. 잘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만 있을 뿐이다. 때마침 이곳 베트남에 머물면서 영국인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만 영어 학교에 보내는 게 아닌 자신도 영어를 배우는 엄마를 자처했다.


첫 수업, 선생님은 이런저런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나는 때로는 흥겨이 말하다가도 자주 동공을 종횡무진 움직이며 아는 영어 말을 찾아내려 애썼다. 무려 한 시간을 영국인과 독대하다니! 요가 후 개운하게 씻었는데 다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땀 이었던게지. 그래도 나의 총평은 "즐거웠음"이다. 선생님이라는 대상을 만난 게 좋았고 외국인과 말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생각지 못한 다양한 주제로 추억을 소환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감, 아니 내 삶의 재료들이 소중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단 한 번 받아보고 횟수를 줄이던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원래 계획대로 4주간 착실히 이 클래스에 응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어쩌면 영어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나를 채우는 시간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엄마의 영어 공부가 끝나니 이제 꿈에서 깰 시간, 아이의 하교 시간이 돌아왔다. 쓰기도 숨 가쁠 만큼 오늘 정말 낮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베트남 한 달 살기를 하며 요가에 독서, 글쓰기에 영어 공부까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가 싶다가도 이곳이기에 더욱 특별해지는 일들이라는 생각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외국, 여유 시간. 나는 이 조합을 잘 버무려 내 로망을 채우겠다. 자기 계발이라는 항목에 들어가는 일들 이겠지만 나는 지금 이 활동들을 로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뭐가 되려고 가 아니라 그저 좋아해서,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니까. 이걸 할수록 행복하니까 지금의 부지런은 로망의 실현이다.


로망을 실현하는 여행자! 이 번 여행의 콘셉트는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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