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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Jan 29. 202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씬 깜언!

인사만큼은 이곳의 언어를 쓰고 싶은 여행자

나트랑 Day 25


나트랑에 온 지 어느덧 25일째를 맞고 있다. 외국을 방문할 때면 최소한 인사말 정도는 그 나라의 언어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그곳을 방문한 이방인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사말로나마 그곳의 문화에 조금이라도 젖어들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베트남 나트랑에 와서는 처음부터 그러지는 못했다. 우선 내 귀에 익지 않아서 말로 내뱉을 자신이 없어 머뭇거렸다. 그리고 관광객을 대하는 게 익숙한 이들은 내게 먼저 “Hello” 하고 인사를 건네고 나도 그와 같이 화답하게 된다. 어차피 베트남어 한마디 못하니 영어라도 열심히 잘 구사해보고 싶다는 조급함에 무조건 영어만 내밀기도 했다.


그런데 식당, 카페, 야시장 등 내가 방문하는 곳이 늘어날수록 점점 듣게 되는 언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한국어였다. 이곳 현지인들은 나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의 한국어를 너무나도 반갑고 다정스레 건네주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대일 수도 있다. 혹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노력의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베트남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보다 더 다정한 말투로 사근사근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한국어가 처음에는 몹시 신기하고 반가웠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움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베트남을 찾은 나는 이곳 언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한국어로 응대를 받는 게 참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그 나라 언어로 인사하려던 노력이 왜 이곳에서는 사그라들었는지 부끄러웠다.


그래서 시작했다. 호텔에서, 식당에서 마주칠 때 내가 먼저 이곳의 언어로 인사를 건넸다. “씬 짜오“ 하고 굿모닝처럼 활기차게 말했다. 그렇게 나트랑에 온 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 인사가 자연스레 입에 붙게 되었다. 이곳의 언어로 이곳의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그 기분이 햇살처럼 좋았다. 그동안 놓친 예의를 이제야 챙긴 개운함도 들었다.

그렇게 신나게 “씬 짜오”를 말할 줄 알게 되니 이제 다음이 고파졌다. “Thank you”가 아닌 베트남어 ”씬 깜언“을 말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앞의 ”씬 짜오“보다 장벽이 높았다. 일단 내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 억양이 맞나 확신이 없었다. 혹여 미세한 차이로 인해 잘못된 말로 전달될까 봐 우려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베트남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고 말해야지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씬 깜언“을 들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내가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일들은 매일 많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때마다 영어로 하는 인사가 아닌 이곳의 말로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 용기 내어 보았다. 먼저 여기서 다니고 있는 요가 클래스의 선생님께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네보았다. 그리고 이게 맞느냐고 재차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통과였다!

이제 마음 놓고 말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후 감사할 일이 생기면 당당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씬 깜언”을 말했다. 베트남 사람이 내게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도 더더욱이 “씬 깜언”으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때 내게 다시 돌아오는 그들의 “씬 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아, 이거구나!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이렇게 마음을 주고받는 거구나!‘ 그 순간 행복감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나의 “씬 깜언”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있다. ‘배려받는 게 당연한 외국인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당신들의 언어로 감사를 표하고 싶은, 이곳이 궁금하고 이곳에 녹아들고픈 여행자입니다.’ 겸손과 존중의 마음으로 호의와 환대가 오가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내 여행의 지론이다. 그리고 내가 낯선 곳을 여행하는 방식이다.


이제 나는 만남의 인사 “씬 짜오”와 감사의 인사 “씬 깜언”은 신나게 말할 수 있는 여행자가 되었다. 다음은 무엇을 말해볼까? 더디지만 하나씩 늘려가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여행자임을 실감 나게 한다. 낯선 곳이 익숙해지는 반가움, 낯선 언어가 익숙해지는 명랑함. 그리고 인사로 연결되는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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