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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Apr 10. 2024

밤벚꽃

그 아래 중학생

4월은 벚꽃을, 벚꽃은 밤벚꽃을, 밤벚꽃은 중학생 나를 소환한다.


나는 4월에 태어났다. 해마다 내 생일 즈음이 되면 벚꽃이 만발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동학사 입구에 데려가 밤벚꽃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유년시절 봄의 잔잔히 빛나는 연례행사였다.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기억인지 기억의 재구성인지 확실치 않은 사진 한 장이 매년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두운 밤을 하얀 꽃잎으로 가득 채운 벚나무, 그리고 그 아래 단발머리 체크 남방을 입고 안경을 쓴 나.


그 연례행사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 길을 한결같이 좋아했는지도 그저 짐작에 맡길 뿐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점점 선명히 좋아졌다. 밤에 환히 빛나는 벚꽃을 보여주려는 마음, 나의 생일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보여주려는 마음, 그렇게 가장 예쁜 나무 아래 세워놓고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던 그 마음. 내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그 나이 때 부모님의 마음이 해마다 점점 선명하게 내 안에 인화되고 있다.


아빠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셨고 지금도 좋아하지 않으신다. 어릴 적 보문산 입구에서, 자연농원 (지금의 에버랜드) 가는 길에서 차를 돌리던 아빠의 뒷모습이, 보지 못했지만 느껴지는 그 표정이 한 번씩 떠오른다. 벚꽃 시즌 동학사 가는 길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다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만큼은 놓치지 않고 매년 데려가주셨다. 낮이 아닌 밤에 간 이유는 한낮의 인파 열기가 식은 뒤를 노리신 걸까? 아니면 밤벚꽃이 더 특별해서였을까. 밤벚꽃이었기에 이토록 내게 선명히 남아있는 것일까.


동학사 가는 도로 양쪽의 벚나무는 서로를 향해 꽃터널을 만든다. 해를 바라보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겠다는 듯이 그렇게 마음을 드러낸다. 차창 너머 수많은 꽃잎들을 스치며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가로등뿐이던 도로가 환해지는 순간의 황홀함을 그때도 알고 있었나 보다. 낮보다 더 선명히 빛나는 꽃이 어린 내게 강렬한 존재감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 찍을 곳을 고르는 일을 하셨겠지. 나는 그저 정해주신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사진이 찍히길 기다렸다. 그 순간을 즐겼는지, 어색해했는지, 혹은 별생각 없이 정지 상태로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줄기 빛 같은 기억 하나, birthday girl.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 생일이어서 이곳에 와 있다는 그런 주인공 마음이 있었다. 눈앞에 촛불 밝힌 케이크를 둔 듯 머리 위를 밝히는 벚꽃을 즐겼다. 모두가 환호하는 특별한 밤벚꽃 아래 가장 특별한 순간을 맞이한 사람은 내가 분명했다.


정지된 사진을 통과한 듯 이제는 부모가 된 내가 어제 밤벚꽃 아래 서 있었다. 아파트 놀이터, 평일 번개 같은 저녁 외식, 킥보드를 타는 아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소소한 시간이었지만 밤벚꽃은 두 순간을 수시로 오갔다. 더 짙은 밤이었을 것이고, 하얀 꽃뭉치는 더 뽀글뽀글 풍성했을 것이다. 그 아래 사진을 찍는 마음도,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더 깊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었지만 아직은 내 부모님의 흉내조차 잘 내어지지 않는 얕은 나를 새삼 인식하며 봄밤을 바라보았다.


더 황홀해지고 깊어질까? 밤벚꽃 아래서. 여러 번의 봄을 거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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