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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Apr 17. 2024

어떤 위로

나를 기억해 주는 마음들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말들로 받는 위로의 힘은 크기를 떠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늘이 그랬다. 요 며칠 나는 좀 지쳐있었다.


아이가 주말여행에서 급체를 하면서 내내 아팠다. 며칠을 마음 졸이며 곁에서 돌보았다. 학교를 못 가고, 조퇴를 하고,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다행히 오늘은 한결 나아졌지만 아직 급식을 먹기에는 불안해서 점심시간 전에 하교하기로 했다. 그 앞뒤 시간을 케어하기 위해 회사에는 급히 휴가원을 올렸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세 시간, 후다닥 집안일을 한두 가지 해치우고 좋아하는 동네 카페를 찾았다. 이렇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책과 패드, 키보드를 들고 카페로 달려가는 것이 큰 낙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이런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라테를 한 모금 마시며 좋아하는 것들을 주섬주섬 펼쳤다. 새벽에 쓰던 글을 이어서 써볼까 했지만 어쩐지 잘 써지지 않던 내용이었기에 일단 책부터 읽기로 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 다시 써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렇게 책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 멈춰 서서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남을 이해할수록 나를 용서하기 어려운 날이 앞에 창창하게 놓여 있었다."

<이듬해 봄 / 신이인 저>

아이를 이해할수록 부끄러운 엄마인 내가 떠올랐다. 남편을 이해할수록 이기적인 내가 떠올랐다. 부모님을 이해할수록 차가운 딸이, 시부모님을 이해할수록 속 좁은 며느리가 떠올랐다. 그런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나를 인식하며, 부디 앞으로의 용서들은 수월한 수준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단톡방의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갔다.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서 문장 나눔방에 멤버들이 올린 책의 문장과 단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주욱 읽어 내려가는데 오늘따라 따뜻하고 뭉클한 게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아, 나 지금 좀 지치고 쓸쓸했구나.'

그 마음을 지금 읽고 있는 책 사진과 함께 단톡방에 남겼다. 그랬더니 따뜻한 말들이 나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오늘 읽으며 발견했다는 책 속 시에 대한 구절을, 아름다운 시를 선물해 왔다. 읽으며 내 생각이 났다는 감격스러운 말과 함께.


그 구절들은 이러했다.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존재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아무리 희망찬 시라고 하더라도 그 시가 충분히 좋은 시라면 거기에는 얼마간의 슬픔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건 아름다움이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저> 중 황인찬 시인의 산문집 내용 -


"나의 시가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는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시인 존 베리먼-


그리고 루미의 시 한 편.


이조차 잊고 있었지만, 요즘 시에 대해 위축되어 있었다. 시를 쓴다고 말하지만 처음의 호기로움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이분들은 시와 함께 나를 떠올려 주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지친 나의 메시지에 시와 문장들을 마치 물 한잔 건네듯 시원하게 내밀어왔다. 나는 그 마음들을 들이켰다. 위로의 순간이었다. 그 응원들 덕분에 다시 시를 좋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위로를 받는다는 건,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위로를 받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표면의 슬픔뿐 아니라 저 깊은 내면의 고독도 어루만진다. 홀로 쓸쓸히 가지려던 회복의 시간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픈지조차 몰랐던 시에 대한 마음까지 어루만지게 되었다. 그 손길들에게 무척 감사한 오늘이다. 잊지 못할 문장들이고, 오래 기억될 마음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시를 대하는 나를 지탱해 줄 응원이다.


어떤 음식을 보면 그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떠오르곤 한다. 시를 향한 내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기억되고 있다. 그 황송한 떠올림을 감사히 들이키며 다시 시를 써봐야겠다. 움츠러들지 말고, 대놓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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