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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Dec 07. 2023

츤데레

그와의 드라이브

 사람들은 그를 츤데레라고 했다. 직장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같이 일할 기회가 없어 겪어 보지 못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를 무례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일명 싸가지 없는 새끼.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직설적이었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에 가까웠다. 다소 고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그를 기피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으르렁대며 부대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변호했다. 말로 다 까먹어서 그렇지 정은 많아. 표현하는 방법이 투박할 뿐이지 나쁜 애는 아니야. 그러니까, 알수록 진국. 그럼에도 나는 진작에 그와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보통 말도 예쁘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폭력에 가까운 그의 거친 언어는 미숙한 인격의 반영이라고,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리 없다고 생각했다. 동갑인 그는 막 입사한 나를 처음 보자마자 말을 놓았다. 반갑다, 친구야. 4년 먼저 입사한 그와 친구가 될 생각이 없었던 나는 깍듯하게 존칭을 쓰며 거리를 두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놓아봤자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기꺼이 허락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영역도 쉽게 침범하곤 했다. 단중하게 선을 긋는 태도에서 호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는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삶의 결이 다른 그와 친해질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사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질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나로서는 굳이 고슴도치를 껴안고서 상처를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는 사내의 동갑 남자들끼리 저녁을 먹었다. 모두 여섯 명이었다. 초저녁부터 왁자지껄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주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다. 주제가 바뀌고 술기운이 오를수록 소음의 데시벨이 커졌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힐긋거리는 시선이 등 뒤로 꽂혔다. 그는 토론을 전투처럼 하는 타입이었다. 논리와 비논리를 전부 동원해 상대를 납득시키고 굴복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치열한 공방의 승패가 갈리자 승리를 자축하는 깃발을 꽂으며 그는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라고 하는 것이 토론이라고 정의하던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무리를 이끌었고 모임을 주도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만 사이다를 마셨다. 혼자만 점잔 빼는 게 고깝게 느껴졌는지 그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잔을 들이밀고 거듭 술을 권했다. 그래도 일처리 하나는 깔끔하게 해. 그리고 자기 사람한테는 진짜 잘해. 그를 두둔하던 동갑내기 친구의 말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나한테는 잘하지만 다수가 싫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나에게는 잘 못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2차 자리까지 파하고 집에 가기 위해 다들 택시나 대리운전을 불렀다. 대뜸 누군가 말했다. 넌 술 안 먹었으니까 얘 태우고 가면 되겠네. 아차,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날 분위기에 휩쓸려 치명적인 실수를 두 가지 범했다. 첫째, 그와 같이 차를 탄 것. 둘째, 말을 놓기로 한 것.

 

 임기 만료로 인해 직장 내 노동조합의 집행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됐다. 연임하던 기존 지회장이 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노조의 대의원이던 나는 선거관리위원을 맡게 되었다. 부지회장을 하던 어느 직원과 사무국장을 맡았던 그, 둘 중 하나가 지회장 직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그보다는 무색무취한 다른 직원의 인기가 조금 더 높았다. 심지어 그가 지회장이 되면 노조를 탈퇴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후보자 등록 마지막 날까지 그는 어떤 직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던 그가 집행부에서 빠지게 되자 지회장 자리를 놓고 불화가 있었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선거 관련 업무가 있을 때마다 현 사무국장인 그가 절차를 알려주고 밥을 사주었다. 본의 아니게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술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공격적이었고 상대를 뭉개는 언어를 사용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지. 그의 편협한 아집이 같잖아서 끈적한 담론에 동참하기도 했다. 건전한 토론을 위해 단서 조항을 하나 달았다. 자, 이제부터 '네가 뭘 알아' 금지! 토론으로 그를 이겨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단지 궁금해졌다. 뾰족한 가시로 자신을 단단하게 방어하고 있는 그의 세계가. 그는 별것도 아닌 말에 버럭 화를 냈다가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옹고집일수록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갑자기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 꺼내더니 먹으라는 말도 없이 시트 위로 던졌다. 보통은 먹으라고 말이라도 하면서 주지 않냐? 그냥 처먹어! 둘이서 사탕을 하나씩 까 먹었다. 사탕의 달콤함이 생의 씁쓸함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집행부에서 내려오면서 시원섭섭했겠다. 고생 많이 했어. 술이 조금 과했는지 그가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왜 처음에 노조 집행부에 들어갔는지 알아? 타지에 취업해서 직장 들어와 보니까 다 지역 사회더라고. 자기들끼리 형 동생 하면서 끌어주고 당겨주는데 나만 외톨이인 거야. 소속이 갖고 싶어서 그랬어. 나도 그 사람들 무리 속에 끼고 싶어서. 네가 뭘 알겠냐, 여기 놈이! 그와 단둘이 차를 타는 행위를 경계했던 것은 혹시라도 친해질까 두려워서였다. 밀폐된 자동차 안이라는 공간과 둘만의 시간, 무장 해제를 유도하는 무드, 술기운. 그 모든 것이 응집해 마음을 열기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아파트 단지에 그를 내려주었다. 태워다줘서 고맙다며 어깨를 툭 치고 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위풍당당했으나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를 두둔하고 변호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차 안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친구야, '네가 뭘 알아' 금지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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