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서 와
https://youtu.be/WmPrjhnSEdc?si=0xmoXKtR0S0U5y-S
내 꿈은 과학자가 아니었어. 사과를 키우는 농부는 더욱 아니었고.
단 한 번만이라도 너의 눈 뜬 모습을 보고 싶어. 눈길을 맞추고 네게 닿는 그 길목에서 교감하고 싶다. 나를 보고 환하게 활짝 웃어 준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텐데. 넌 매번 면회 시간 직전에 모유를 먹기 때문에 항상 단잠에 빠져 있지. 그래서 늘 상상만으로 너의 눈동자를 바라봐. 상상 속 너의 눈은 언젠가 사진으로 본 모레인 호수처럼 푸르고 그윽해. 그 아늑하고 고요한 호수에 마음을 담그면 비로소 순전한 평안에 이르게 돼. 난 불순물로 혼탁해진 흙탕물 같은 눈을 하고 살았거든. 누구에게 털어놓긴 좀 부끄럽지만 미숙하고 들쑥날쑥한 심장으로 여기까지 버텨온 거지. 그런데 너를 맞이하게 되면서 거짓말처럼 헛된 욕망과 근심거리는 몽땅 잊을 수 있게 된 거야. 인생에서 누군가 온다는 건 이토록 경이로운 일이야.
잊지 않고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게 네 작은 얼굴과 손과 발을 기록해두고 싶은데, 규정 상 미숙아 치료실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눈에만 너를 담아야 해. 아무리 담아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턱없이 부족하지만. 인간적으로 십 분이란 면회 시간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과거에 일요일 저녁을 대표하던 티브이 쇼 중 개그콘서트가 있었어. 마지막 코너까지 끝나면 이태선 밴드가 스티비원더의 'Part-Time Lover'란 곡을 연주하는데 그 순간 휴일이 다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지. 그래서 지금도 그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갑자기 짜증과 분노와 허탈함 따위가 몰려오곤 해. 간호사가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Part-Time Lover의 전주가 귓가에 맴도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면 우리는 겨우 네게 작별 인사를 하지. "지안이, 사랑해. 내일 또 만나."
네 엄마는 병실에서 처음 유축을 하던 날, 가슴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대. 불덩이처럼 뜨거운 데에다가 돌덩이처럼 딱딱해지는 가슴을 그냥 도려내 버리고 싶을 만큼 아팠대. 가슴이 무언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너를 먹이기 위해 유축기를 가슴에 들이댔지. 물론 나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냉찜질과 마사지를 도우며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했단다. 첨엔 몇 방울 나오지 않더니 사흘이 지나고부터 제법 양이 모이기 시작했어. 저장팩에 넣어 너의 병실에 갖다주고 젖병을 살균 세척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렇게 잘 나가다가 한 번 말실수를 하기도 했어. 유축이란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머리를 굴리다가 착유라고 말해버린 거지. 유축이나 착유나 문법상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무슨 젖소냐며 성을 내더라. 안 그래도 유축할 때 가축이 된 거 같아 자기도 자괴감이 세게 왔다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지. 금 천 냥이면 오늘 시세로 약 3억 5천만 원 정도니까 말의 중요성은 경제 가치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한 셈이지. 나중에 언어를 배우게 되겠지만 말은 더디고 무겁게 뱉어야 해. 특히나 민감한 시기엔 단어 선택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단다.
웃지 마. 사실 내 첫 꿈은 가수였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학기가 시작되면 연례행사처럼 반 아이들 모두에게 돌아가며 장래희망을 물었거든. 왜 그렇게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에 집착했는지. 꿈은 노인이 돼서까지 평생 품고 사는 건데 말이야. 그런데 놀랍게도 열에 일곱은 과학자가 꿈이었어. 가끔 의사, 경찰, 교사나 간호사도 있었지만 대세는 과학자였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1987년도 한국은 현대자동차의 엑셀이 미국 수출에 성공하며 기술산업화의 전환을 맞았고, 게다가, 과학기술처 중심으로 기초연구진흥계획이 마련되기 시작했지. 또한, 반도체 연구 인력이 확충되며 DRAM 상업화 준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다지. 하필, 1988년도 서울올림픽을 맞아 혁신적인 수준의 전산, 통신 시스템이 대규모로 도입됐는데, 왜 또, 국내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 거야. 그러니 다들 과학자가 되고 싶지 않겠어. 나 역시 장영실과 에디슨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똑같은 꿈을 품을 순 없잖아. 명색이 피아노 학원생인데. 그리고 '조동진'과 '어떤 날'의 음반을 듣는 초등학생이 몇이나 되었겠어. 인프피의 숙명 같은 거지. 일 번부터 일어나 전부 과학자라고 앵무새처럼 꿈을 발표하기 시작했더랬어. 다행히 반 번호는 이름 순이어서 내 뒤에는 홍성호밖에 없었거든. 표한수까지 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난 고민하고 있었어. 그냥 남들처럼 과학자라고 할지, 진짜 꿈인 가수라고 말할지를 말이야. 괜히 가수라고 했다가 아이들이 야유하거나 선생님이 노래를 시킬까봐 두려웠나봐. 그러다 마침내 내 이름이 호명됐을 때 과학자와 가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의 입에선 그만 '과수'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어. 순간 교실엔 끝을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고 이윽고 선생님은 질문했지. "너네 집 혹시 과수원 하니?" 그 이후로 한동안 내 별명은 농부 혹은 과수였다. 젠장, 뮤지션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가끔 진짜 농부가 되고 싶던 날도 있었어. 사람에 치이고 질려버렸을 때.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고, 찾지 못하는 두멧골로 숨어 들어가 농작물이나 키우며 안분지족하며 살면 어떨까. 정말 다 포기하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까.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지. 내가 두려워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맞물리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으니까. 아무도 없는 산속에 칩거한다 해도 마음까지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런 식의 회피로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을 테고, 차라리 너저분한 꿈 하나 품고 지리멸렬하게 생과 맞서는 게 더 홀가분할 것 같더라. 그랬던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너를 낳았으니 가수나 과학자가 된 것 못지않은 업적을 이룬 셈이지. 꿈은 평생 꾸는 거라고 했잖아. 지금 이 순간 내 꿈은 그냥 너의 아빠가 되는 거야. 올곧고 억세지는 못해도 네가 내게 해준 것처럼 서로의 슬픔을 덜어갈 수 있는, 가끔 서로의 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바구니 카시트에 너를 앉히고 네 엄마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야.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져서 퇴원이 늦었어. 분유를 잘 삼키지 못해서 목 삼킴 검사도 수차례 했지. 뇌에서 백질 현상이 발견됐다고 해서 뇌 MRI 검사까지 했지만 결국 넌 건강하게 집으로 가네. 태어나던 날엔 경황이 없어서 어리바리했는데 함께 집으로 향하는 오늘은 오히려 감회가 남다르다. 사십사일 동안 인큐베이터 안에서 고생했어. 잘 버텨줘서 고마워. 미숙아에게는 교정 나이라는 개념이 존재해서 넌 원래 출산 예정일인 지금이 또 다른 탄생일이기도 해. 생일 축하해. 그리고, 집에 온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