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https://youtu.be/rADx_iuXQ9E?si=cLpnO7cbvRJ55XJ8
출산 예정일인 목요일 아침, 아내는 보호자 한 명만 면회 가능한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출산 후 오일 정도 입원해 있다가 바로 퇴원해야 된다는 안내를 듣고 만반의 준비를 다해 병실을 찾았다. 입원해 있는 누군가를 수발하기 위해 밤을 같이 보내기는 처음이었다. 내 키보다 겨우 몇 뼘 더 큰 간이침대를 보자마자 허리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휴가를 낼 수 있는 현실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할 텐데,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벌써부터 물에 젖은 신을 신은 기분이었다. 집 떠나와 군에 입대하는 스물한 살의 훈련병처럼 두려웠다. 인생이 고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두 겹, 세 겹의 안전장치가 무참히 허물어질 때 받는 피로감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무지렁이 주제에 그깟 예측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스트레스까지 받다니 실로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사각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게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세운 계획은 단지 자기 안정과 만족의 도구일 뿐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았다.
아내는 걱정했던 것보다 태연하고, 의젓하게 나를 맞았다. 선물 받아 보관 중이던 성심당 케이크를 챙겨 오라고 한 걸 보면 적어도 비관과 두려움 따위에 매몰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숟가락 들 힘과 의지만 있어도 어쨌든 살게 된다. 아내는 불과 며칠 사이에 돌변했다. 초음파 사진을 통해 그토록 원하던 딸이 아니라 아들임을 알게 된 순간 실망하던 아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가 다 키워." 당초에는 산후조리원에 가자마자 모유 수유를 하지 않고 단유 할 계획이었는데 조산하는 바람에 생각을 고쳐 먹었다. "열매가 작고 가볍게 나올 텐데 모유라도 먹여야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는 없잖아." 출산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진정제 역할을 해서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차단한다.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고 모성애를 증가시키는 것이 바로 옥시토신의 힘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그녀의 일생일대 사랑과 행복으로 가장 충만한 순간인 것이다.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였지만 쉽게 동의할 수는 없었다. 아이 없이도 성숙한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부모가 됐지만 철부지로 늙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다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희생에 대해 배우는 것만은 확실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한동안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산후조리원 예약도 취소하고 집에서 몸조리할 계획을 짰다. 조산으로 인해 세상이 으레 당연하려니 하고 정해 놓은 추세에서 탈피하는 꼴이었다. 대세와 동떨어진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겉치레 없이 본질에만 집중하게 되는 게 싫지 않았다. 오전 열한 시쯤 제왕절개 수술로 애를 낳기로 했다. 아내는 건강한 편이라 n번의 쌍꺼풀 수술 말고는 수술대에 누워 본 적도 없었다. 명랑하게 파이팅을 외치며 이동식 침대에 실려가던 그녀의 쌍꺼풀이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초조하고, 까마득했지만 출산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다급하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기계적으로 핸드폰부터 꺼내 들고 이동 중인 인큐베이터 옆으로 다가갔다. 출산 직후 남편이 해야 할 일 중 첫째가 동영상 촬영이라나. 지안이는 하얀 천으로 몸을 둘둘 감고 있었다. 얼굴엔 하얀 이물질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조그마한 입과 코로 식식대며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쪼그만 놈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대견해서 그만 눈물이 찔끔 나왔다. 2025년 5월 22일, 지안이는 2.065킬로의 작은 몸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이목구비가 나와 똑같이 닮았다. '너무 예쁘잖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더니. 거칠고 뾰족한 가시가 보드랍고 반지르르할 리가 없음에도 제 새끼는 한없이 어여쁘게만 보이는 법이다. 전에 없던 부성애가 꿈틀거리더니 인류 전체를 향한 박애로 발전해 늘 시큰둥하기만 한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마법 같은 첫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평생 녀석을 짝사랑하며 열병에 시달리며 살아갈 것을.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아기를 들여보내고, 회복실에서 잠시 머물던 아내가 의기양양하게 침대에 실려왔다. "오빠, 지안이가 글쎄 잘생겼어."
자연분만이 선불이라면 제왕절개는 후불이란 말처럼 아내는 마취가 풀리면서 찾아온 통증을 맞이해야만 했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한계가 있어 밤새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출산 다음날 11시부터 10분 동안 면회가 가능했다. 아내는 극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지안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평소라면 걸어서 2분이면 도달할 거리였지만 어기적어기적 느린 걸음으로는 아득하기만 한 경로였다. 그런데 정말 호르몬의 노예라도 된 것일까. 아내를 부축하고, 아니, 거의 얼싸안다시피 하고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듯 떠듬떠듬 걷는데 느닷없이 옥시토신이 방출되는지 행복한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유대가 아내와 지안이와 나를 끊을 수 없는 삼각으로 묶는다고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재즈 음악에 맞춰 블루스를 추듯 우리는 끈적하게 합을 맞췄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막춤을 추며 더디게 걷는 만큼 행복의 선율이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기를 소망했다. 통증 때문에 도저히 완주할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도착한 지안이의 방. 녀석은 직육면체의 방, 사각의 인큐베이터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양수 때문에 생긴 얼굴 부기가 다 빠져서 처음보다 더 갸름해졌다. "여보, 우리한테서 어떻게 저렇게 예쁜 천사가 나왔을까." 한동안 감탄사만 내뱉다가 건넨 내 말에 아내가 답했다. "내 배에서 나왔거든!" 무임승차에 실패한 나는 네모난 인큐베이터 안의 지안이를 위해 기도했다. 갑자기 수능 금지곡이 머릿속을 마구 지배하는 것처럼 네모의 꿈이란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죽을 만큼 끔찍했던 네모. 사각의 시험지, 수험서, 칠판 따위에 마음이 마구 관통당하던 시절.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향한 날카로운 혐오에 잠식되어 살던 계절. 반지하에 작게 뚫린 사각의 창으로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잘해야 된다는, 이겨야 된다는, 벗어나야만 한다는 압박이 나를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함으로 정형화시켰다. '네모야, 우리 아들 잘 부탁해.' 그토록 간단히 네모와 화해하는 걸 보니 부모가 돼서 성숙해진 건 모르겠고 조금 뻔뻔해졌다. 하긴 읽기 쓰기의 도구였던 소설책과 노트북도 사변형을 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 휠체어를 타지 않고 다시 걷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빨리 회복한다고 핑계를 댔지만 실은 아내와 함께 그 춤을 더 추고 싶어서. 그 꿈에 몸을 맡기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