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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Aug 23. 2023

UNWTO로 날아온 캄보디아 왕국의 편지를 보고

‘Dear. Kim YIGON’, 한국은 왜?

1. 단순하면서도 나름 알찬 다이어리 캘린더의 되풀이가 반복되던 중, 편지가 왔다. 프놈펜에서 개최되는 유엔 세계관광기구 국제회의 참가를 캄보디아 왕국이 공식적으로 반기는 초청공문이었다. 그 편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UNWTO 본부 직원들은 캄보디아 정부 공무원 및 관광청 직원들과 화상회의를 했고 나도 줌으로 참석했다. 회의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고,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긴장했다.

 

2. 곧 개최되는 프놈펜 회의에는 유엔 가입국 아태지역 관광부 장관들이 오고, UNWTO 사무총장님을 비롯해 많은 임원진이 참석한다. 나는 이렇게 규모가 큰 회의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또, UNWTO에서도 인턴을 국제회의에 직접 파견하는 건 거의 처음이라고 들었기에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바삐 움직였다. 이번 파견이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니 지금 내가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3. 카메라 화면에 비친 부릅뜬 나의 눈은 내가 봐도 꽤 부담스러웠다. 회의하면서 하시는 말씀들을 열심히 적었는데, 뭘 적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좋은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제아무리 성심성의껏 최고의 멋진 머리 손질법을 가르쳐줘도 집에 오면 모두 잊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 기대가 되었지만 떨렸다. 그것도 엄청! 줌 회의가 끝나자마자 순간 힘이 풀려 잠깐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넋 나간 듯 있다가, 아까 받은 편지를 열었다.


( ▲ 캄보디아 정부에서 UNWTO에 보내온 초청공문 일부 )


4. 공문 수취인란을 보고선 긴장이 사그라질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먼저 이름 앞에서 괜히 따뜻함을 느낌을 풍기는 ‘Dear’이라는 단어와 그 아래 수취인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내 경험에 빗대어 보면, 한국은 분명하게 서양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편지를 쓴다. 내가 지난 4화에 쓴 에르메스 회장의 편지도 그렇고, 이탈리아에서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들, 마드리드에서 집주인의 우편물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 과거 한국인의 편지와 다른 나라 사람들의 편지 내용을 비교해 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5.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그 사고는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이런 것들이 가장 직접 친숙하게 형식화된 게 바로 편지가 아닐까 싶다. 내 경험에 따르면 먼저, 수취인과 발신인을 쓰는 순서가 다르다. 가령 한국은 대한민국으로 시작해, 내가 속한 도, 그리고 시, 번지에 이어 마지막에 나의 성과 이름을 쓴다. 넓은 곳에서부터 좁은 곳으로 점점 좁혀지며, 모두의 것에서 나로 옮겨간다. 즉,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6. 반면에, 특히 서양은 가장 우선으로 개인 이름을 쓰고, 그 뒤에 성, 그 후에 번지, 시, 주, 국가명을 적는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에서 제일 먼저 출발해 그다음 가족, 마을, 사회를 쓰고 국가로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점점 넓혀가며, 나의 것에서 모두의 것으로 확산해 간다. 이에 더불어 편지 내용에서도 ‘어떻게 지내?’와 ‘별일 없지?’ 같은 시작하는 인사의 차이, 날짜를 명확하게 표기하는 것 등 다양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7. 왜 그럴까? 과거 외세로부터 도전받고, 남이 우리의 역사를 결정짓고 있었던 것의 영향일까? 오랜 신분사회에서 비롯한 명령 하달식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차이 때문일까? 나는 국어국문학과도 사학과도 아니지만, 괜히 물음표를 던져본다. 내가 받은 공문에는 완전히 서양식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한국식의 수취인 표기법이 아니었다. 혼합된 채 굵은 글씨로 나의 성인 ‘김(Kim)’부터 시작해서 이름, 번지, 도시, 국가 순으로 쓰여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쁘지 않은 섞임이다.


8. 어쨌든, 내가 기분이 더 좋아진 이유는 단순하다. 평소라면 무의식적으로 그냥 공문 받고 스캔을 뜬 후에 내 할 일을 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내가 하는 행위를 내가 몰랐을 것이다. 근데 수취인란을 보고 여러 물음표를 나 홀로 던졌다. 시험 보듯 급하게 해답을 얻고자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교환학생을 마치며 다짐한, 묻고 또 묻기다. 무의식 속에서 묻고, 의식 속에서도 묻기! 혼자 뿌듯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피식 웃었다. 귀엽군. 나 자신ㅋㅋ

  

‘자, 그럼 이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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