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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안 Jan 23. 2023

삿포로를 좋아하게 된 건

1 삿포로라는 지명을 처음 알게 된 건 불멸의 사랑 뮤직비디오 때였다. 그때 우리 집은 케이블이 나오지 않았고 엠넷이나 케이엠티비 같은 채널이 있다는 건 파스텔이나 주니어 같은 잡지 덕분이었지 본 적도 없는 때였다. 잡지를 사서 보면 "쇼! 뮤직탱크에서 1위를 차지한~" 같은 소개 문구가 많아서 본 적 없어도 그 채널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이 하는지는 다 알고 있었다. 쇼탱, 리듬천국, 가요발전소... 비디오자키라는 희한한 직함으로 불렸던 이기상과 최할리는 한밤의 티브이연예로 안면을 텄지만 그들이 케이블 출신인 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알고 있었다. 여하간 케이블 채널과 그 채널 출신의 사람들은 내가 볼 수 없고 접해본 적 없는 특별한 분야이고 계층처럼 여겨졌다. 조성모의 데뷔를 기점으로 스토리 위주의 뮤직 비디오가 붐이 일었고 본 적은 없지만 "하루종일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는 케이블 채널은 너무 궁금한 매체였다. 그게 5학년 때고 6학년 말쯤부터 케이블 채널이 나오기는 했다. 


우리 집은 티브이가 세 대였는데 거실에 한 대 안방에 한 대, 오빠 방에 한 대 이렇게 세 대가 있었다. 오빠는 자기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았고 안방은 주로 엄마 아빠가 밤에 틀어놓는 용도여서 낮에는 틀어놓을 일이 없었고 거실 티브이는 주로 낮에 내가 혼자 봤다. 난 뮤직비디오 보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대체로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케이블은 나오지 않았고 무작위로 드라마나 예능을 재방송해주는 "유선방송" 채널이 몇 개 있었으나 그 채널들은 뮤직비디오와 관계가 없었다. 내가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경로는 예능이 끝나고 잠시 광고처럼 틀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1분 남짓 나오는 처음 보는 그 영상들은 엄청나게 감질나고 궁금했다. 그런데 조성모 뮤직비디오는 당시 파격적으로 공중파에서 풀버전을 보여준 이례적인 영상이었다. 그게 대히트를 치고 너도나도 그런 뮤직비디오를 찍어대며 김세훈과 차은택 같은 뮤직 비디오 감독들이 이름을 날렸다. 지방 사는 초등학생인 내가 끝까지 본 적도 몇 개 없는 뮤직비디오 감독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여하간 우리 집은 지역 유선방송이 나왔고 유선방송은 무작위로 드라마나 예능을 재방송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혼선이 있어서 거실과 안방을 빼고 오빠 방 티브이에서만 엄청나게 노이즈 많은 화면으로 케이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집에서 신청한 게 혼선이 됐을 것 같은데.... 이건 혁명적인 사건이라 나는 그 무렵부터 오빠가 없을 때 오빠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그 채널들에 몰두했다. 그나마 화면이 제일 깨끗한 게 중화권 방송인 채널 V였고 엠넷이나 케이엠티비는 인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나왔다. 색도 문득문득 흐렸다 진해졌다 흔들렸다 하는 그 화면을 정말 열심히 봤다. 1분 남짓 예능 끝나고나 아니면 인기가요 순위소개 영상에서 배경으로나 구경할 수 있던 뮤직비디오의 풀버전 들을 그때 처음으로 봤다. 연예가 중계 같은 데서 가수들이 컴백하면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을 그렇게 보여줬는데 대관절 그게 뭔가 했던 영상들의 정체를 그렇게 알게 됐다. 나에게 케이블 채널과 뮤직비디오는 그런 존재였다. 말하자면.. 서울의 것, 서울 같은 것. 


암튼 그런 존재였던 뮤직비디오가 조성모를 통해 공중파에서도 끝까지 보여줄 만한 임팩트 있는 는 그런 존재가 됐고 얼굴 없는 가수였던 조성모는 멀끔한 얼굴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난.... 가수가 멀끔한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대히트를 친 타이틀곡의 후속곡의 제목은 불멸의 사랑이었다. 후렴구의 "영-원히 널 사랑해" 하는 떨리는 목소리가 너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조성모의 테이프를 샀다. 멜로디도 가사도 다 그럭저럭인데 특정 소절의 음색 때문에 좋아하고 반복하게 되는 노래가 종종 있는데, 내게 이 노래가 그랬다. 막상 뮤직비디오는... 당시 어렸던 내가 관심 가지기엔 너무도 대 배우들이라 별 생각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걱정할 정도로 한심하게 티브이 편성표를 외우고 다니던 나는 온갖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이 뮤직비디오의 촬영 현장을 외울 정도로 봤다. 그때 삿포로라는 지명을 알게 됐다. 



2 난 원래도 겨울과 눈 눈 오는 풍경을 너무 사랑했고 그 현장에 너무도 당연히 매료 됐다. 하지만 삿포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땐 98년이었고 우리 집엔 컴퓨터가 없었으며 나는 삿포로가 너무 궁금해 시립도서관에 가는 소녀는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물어봤으나 엄마도 당연히 몰랐다. 엄마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늘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게 단어든 도시의 이름이든 이론이나 법칙이든 그게 뭐가 됐든. 나는 집에 있던 계몽사 백과사전으로 삿포로를 찾아봤다. 


당시에는 삿뽀로로 표기됐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왔던 백과사전이 다 그렇듯 다단이 나눠져 있고 몇몇 키워드는 컬러 사진과 캡션이 있는 형태였는데 삿포로는 눈축제가 열린 오도리 공원 사진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고 그래서 매년 눈축제가 열리는 일본의 대도시 이 정도로만 기억했다. 여하간 조성모는 삿포로와 무슨 인연인지 나중에 여러 리메이크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타이틀이었던 가시나무의 뮤직비디오도 삿포로에서 촬영했다. 이영애, 김석훈, 손지창이 나오는 뮤직비디오였고 당연히 눈 내리는 삿포로가 배경이었다. 


그리고 삿포로-홋카이도와 관련해 내가 다음으로 접할 키워드는 너무 당연하게도 영화 <러브레터>였다. "무분별한 일본 문화"(ㅋㅋㅋㅋ) 유입 속에서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 개방의 포문을 여는 영화였고 대대적으로 개봉했으나 막상 볼 사람 다 본 영화였기 때문에 개봉 성적은 대단하지 않았다. 이천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비디오가 출시된 후에 봤다. 얼마 전 <러브레터>를 다시 봤는데 이츠키가 죽은 설산의 풍광이 멋지긴 했다. 과하게 오용된 그 장면 또한 다시 봐도 아름답고 절절했으나 이 영화는 어째선지 나한테 "눈 내리는 홋카이도"로 기억되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창가에 선 후지이 이츠키, 도서부, 이츠키가 전학 간 걸 알게 된 날 남겨진 이츠키가 꽃병을 던지던 장면과 그 이후의 표정이다. 이 영화가 홋카이도라는 공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조망하는 영화는 아니었다고 그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물론 영화 속 설원은 아름답지만... 고베와 오타루라는 도시가 나오고 히로코가 당황하면 관서 지방의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는 점 정도로만 그 영화의 지역성에 대해 기억했다. 



3 신혼여행지를 정할 때 전남편과 나는 정말 요만큼도 망설이지 않았다. 순전히 내가 겨울을 좋아하고 신혼여행은 꼭 눈이 많이 오는 곳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날짜도 12월로 정했기 때문에 상견례를 연초에 하며 날 잡는 이야기가 나오자 부모님들은 가을쯤이 날도 좋고~ 했지만 내가 겨울이 좋다고 해서 12월로 정했다. 그렇게 날을 잡고 비행기며 호텔을 예약하고 나서야 눈 축제 날짜를 찾아봤는데 어처구니없게 눈 축제는 2월이었다. 그렇다면 오호츠크해의 유빙을 보자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2월이라 조금 김이 새 버렸다. 미리 알았다면 어차피 끝날 결혼이어도 2월에 했을 텐데(당연히 그땐 끝날 줄 몰랐지만). 하지만 나는 수긍이 빠르므로 가서 눈만 많이 보면 됐지, 하고 여행 책을 사서 무작위로 가고 싶은 곳을 골랐다. 첫날 행선지는 노보리베츠였는데 온천여관의 송영버스를 예약해서 타고 갔다. 시간을 여유 있게 예약해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떴고 그동안 일단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며 간식거리를 사고 버스 대기 장소 근처 출구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셨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정말 사방 천지가 눈이고... 그게 너무 좋았다. 신혼여행지를 두고 왜 휴양지를 가지 않느냐, 일본은 언제든 갈 수 있다, 이때 아니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을 갈 시간이 없다는 온갖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첫 발 떼자마자 내 선택에 요만큼도 후회하지 않았다. 가만있다 그 여행을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정말 행복한 기억이 될 정도로. 그리고 그게 이미 끝난 결혼의 신혼여행이었는데도. 공동의 기억이겠지만 내가 선택한 여행지였고 공동의 시간 속 나만의 기억이 분명 있으며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도시를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다. 여행 기간 내내 매일 같이 크고 작은 눈이 거의 하루 종일 내렸고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사방 천지가 눈 쌓인 풍경이고 엄청나게 맛있는 우유를 먹을 수 있는 그곳을 나는 사랑해 버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홋카이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모든 것의 배경에 눈이 있고 눈 쌓인 길을 매일 같이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이 충만해진다. 그 밖에도 좋은 것은 많지만. 엄청나게 맛있는 우유와 채소, 스위츠, 해산물... 그것들은 나에게 모두 두 번째다. 일본인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도 삿포로의 설경이 멋지다 해도 시원하고 라벤더가 피어나며 온갖 과일이 영그는 여름이 제일 떠나기 좋은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곳의 베스트는 언제나 겨울이다. 언제 어디서든 창문열 고 고개를 젖히면 눈이 쌓여있는 계절. 전 시어머니는 나에게 너도 나이 들면 별 감흥 없다, 지긋지긋해진다 하셨지만 글쎄, 아직은 멀은 것 같다. 



4 처음 이 글을 쓴 건 2016년 전 남편과 삿포로 여행을 준비하면 서였다. 현재와 달라진 사정들 때문에 몇 가지를 수정했다. 굳이 7년이나 지난 글을 들춰 수정까지 하며 게시하는 것은 내가 지금 삿포로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것, 서울 같은 것이었던 케이블 채널과 뮤직 비디오를 경유해 매료됐던 이 도시를 나는 몇 번이고 기회만 되면 오갔다. 혼자 온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관광객 보단 큰 계획 없이 생활인으로서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큰 결심과 각오(와 정확히는 비용)가 필요했기에. 왜 이곳에 굳이 한 달을 머물 결심을 했는지를 상기하고 싶었다. 이번 겨울은 첫눈이 늦었다고 한다. 눈축제가 여전히 계획 중이지만 대설산의 만년설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떠내려온 빙하를 체험하는 일도 근 미래엔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런 미래를 비웃기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마지막 선물인지 씁쓸함인지. 언제 사라질지 모를 한랭 전선이 하강하며 보란 듯이 폭설이 이어지고 있다. 보온을 포기하고 멋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살 결심으로 신고 온 방한 부츠가 없었더라면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제설차가 지나기 전 거리를 걸을 때면 눈에 발이 푹푹 빠지며 가끔 바지까지 젖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혹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다. 죽지 않기. 정말이지,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갈 것이다. 죽기에 너무 모양 빠질 정도로 형편없어서 죽고 싶어도 아득바득 살아 돌아온 도시가 있었다. 이곳에서 죽는다면 정말 괜찮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삶에 미련이 많아서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거나 커다란 소망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결심했을 뿐이다. 여기서 나는 한 달을 보낸다. 그리고 집에 돌아간다. 다른 하나는 질리도록(과연 질릴까?) 눈을 보고 내가 겨울과 눈에 학을 떼는 사람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전 시어머니가 내게 너도 나이 들어 봐라, 했던 것이 2012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2023년.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이제 눈은 볼만큼 봤어, 그리 큰 감흥이 있지 않아, 하게 될까? 이번 여행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머지않았을까? 혹은 아직 멀었을까. 나는 확인하고 싶다. 여느 여행처럼 멋들어진 호텔은 아니지만 대학가 원룸 같은 셰어하우스에서 4일 차 밤을 보내는 지금 내 대답은. 글쎄,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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