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코코아. 나의 늙고 작은 아기. 부를 때는 ‘코아~!’ 하고 뒤의 두 글자만 쓴다. 맨 앞의 ‘코' 가 이 강아지의 성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갈색의 복슬거리는 털이 코코아의 색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확히는 이 강아지가 아주 아주 어려서 사람 손바닥 안에 올려놔도 될 정도로 작았을때 이 강아지를 처음 샀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코아는 왼쪽 뒷 발의 발톱 중 하나가 흰색이고 그 발톱 주변의 털이 하얗다. 품종견 한 마리에 수십만원을 웃도는 펫샵에서 나의 아기는 하얀 발톱 때문에 5만원이란 헐 값에 첫 주인을 만났다. 그리고 몇 사람의 주인을 거쳐 4살 정도였을까, 나의 하나 뿐인 동생이자 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15살이 되었다.
복슬복슬하고 윤기 있던 코코아 색의 털은 커피 맛이 옅은 라떼 같은 색으로 변했고 눈가는 노견들 특유의 흰 막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용감하고 씩씩한 아기는 소위 말하는 ‘정정한 노인들' 처럼 기력이 넘친다. 아침에 밥을 달라고 내 가슴팍을 팍 치며 깨우고 사료 한그릇을 비우고 나면 매일 같이 지내는 똑같은 집인데도 구석 구석 냄새를 맡고 다닌다. ‘밤 사이에 누가 다녀가진 않았나?(다녀갔다면 분명 자기가 깼을 거면서)’, ‘어디 먹을 게 숨겨져 있지 않을까?(그렇게 하루에 몇 번을 보고도 희망을 갖는 건지)’. 호기심 많은 눈빛과 뭐든 궁금해서 사람들 하는 건 다 알고싶은 마음, 지치지 않는 탐구심이 이 아기를 늙지 않게 하는 것만 같다. 가끔 산책 때 마주치는 코아보다 어린 노견들의 힘 없고 세상 만사에 무관심한듯 심드렁한 얼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 아기는 궁금한 게 많아서 안 늙나봐. 이것은 나의 자만섞인 과신이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하면 잘 키워내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정도면 좋은 여건에서 살고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가장 큰 것은 이 아기의 타고난 건강함에 대한 믿음이었다.
정말로 이 아이는 건강하게 타고났다. 내가 키우기 전 몇 번이나 양파를 먹고 죽을 위기를 넘겼지만 짐승 같은 회복력으로 살아났(다고 하)고 내가 키우면서도 양파나 초코렛을 먹고(물론 나는 주지 않았다. 영리한 푸들은 서랍도 열 줄 알고 락앤락도 우습게 연다) 병원신세를 졌지만 아무일 없단 듯 회복했다(천문학적인 병원비가 들긴 했다). 가끔씩 나는 이 아기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리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내 삶의 언제 끝날지 모를 반직선에 어느 샌가 아주 가까이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는 이 아기가 나보다 먼저 온점을 찍지 않기를. 그 온점을 자꾸 뒤돌아보며 내가 남은 반직선을 혼자 걷는 일이 없기를. 말도 안되는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꾸 바라게 된다.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아기 같은 얼굴이나 호기심 가득한 눈빛, 내가 학교 갈 짐을 싸면 가방 위에 올라 앉아 고집스럽게 버티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더듬더듬 했는데 이제 네가 없는 하루가 언젠가 시작될 거란 상상만 해도 나는 더 살고싶지 않을 것 같아. 알아 듣고 있는건지 마는지 모를 아이를 붙들고 매일 매일 말한다. “코아야, 코아 누구 애기? 코아는 누나 애기야. 코아 사랑해.” 누나면서 엄마라니 얼토당토 않지만 나는 그렇게 정했다.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이자 하나 뿐인 아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나의 유일한 아기.
그렇게나 짐작해본적 없지만 이별을 종용받은 일이 있었는데 급성 뇌수막염으로 긴 입원을 했을 때였다. 예방도 없고 그냥 어느 날 자연재해처럼 찾아오는 일이고, 운이 나빴고…그 어떤 말로도 아픈 아기를 유리 병실 안에 두고 바라보는 보호자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숱하게 뭔가가 잘못됐을지 모를 순간들이 영사기로 아주 빠르게 돌아갈 뿐이다. 너무 더운 데 산책을 나갔나?(그는 더울 때 걷지 않는다) 그 공원에 치명적인 벌레가 있었을까?(사상충 예방을 꾸준히 하면 그런 일은 없다) 긴 입원 기간, 병원을 오가는 왕복 6시간 동안 머릿속 영사기를 돌리고 또 돌리다 보면 온갖 순간들이 추가된다. 급기야는 “내가 키워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까지 간다. 매일 병원을 찾아 하루 종일 안고서 “나는 널 떠난 게 아니라 지금 잠시 떨어져있는 것 뿐이라"고 알아 듣는지 마는지 이야기를 했다. 긴 입원과 온갖 치료에도 가망이 없어 안락사를 권유 받았고 나는 하루를 생각해본다 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진 상태였다. 얘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앞으로 죽을 생각은(당분간은) 없다. 그러므로 얘도 죽지 않는다. 죽게 두지 않는다.
제법 단호하게 의사표현을 했고 병원에서는 ‘보호자분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총력을 다 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겠다.’고 해주셔서 가망 없는 치료를 이어가던 중 정말 기적처럼 앉지도 못하던 애가 안기면 웃고, 내가 조금씩 먹이면 고형식도 먹기 시작했다. 하루는 혼자 앉았고 하루는 휘청이지만 혼자 걷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 숨이 차 자기 속도를 자기가 못 따라가는 듯, 그리고 이내 돌아온 자신의 에너지가 스스로도 낯선듯 신난 표정을 지으며 혼자서 병원 내부를 종횡무진 했다. 치료 때문에 털은 여기 저기 밀리고, 약이 독해서 털도 듬성듬성 빠지고, 제대로 못 먹어 더 자그마해진 그 애가 신나게 걷다가 나를 돌아본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 좀 봐!”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우는 얼굴을 했는지 웃는 얼굴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작고 늙은 아기. 15세, 갈색 푸들 남아. 보통의 푸들보다 다리가 짧고 다리 뼈가 굵고 튼튼하며 엄청나게 점프를 잘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을 때만 사람 말을 듣는 영특한 아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크고 작은 병치레를 했지만 보란듯이 건강해진 나의 하나뿐인, 앞으로도 없을 아기. 그 애가 온갖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겨내고 처음으로 (아마도) 벅찬듯 숨을 내쉬며 방금까지 링겔을 맞아서 알록달록한 붕대로 감긴 앞발과 함께 톱톱톱톱 소리를 내며 걷다가 나를 돌아봤던 그 순간. 내가 스노우볼이나 오르골 속 오브제가 되어 영원히 같은 풍경만 보면서 살아야 한다면 내가 고를 순간은 그 날일 것이다. 구간 반복이 되는 그 몇 초 속에서, 나는 영원히 살고싶단 생각을 했다. 질린 적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 애가 나를 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