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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Jul 14. 2022

1. 투박한 그 사랑이 그리운 하루

           - 자전거, 옥수수, 더덕, 밥 짓는 냄새



인생 최초 해돋이를 본 날. 우리가족 완전체가 정동진의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가슴 벅찼던 어느 새벽.


   아빠는 페인트칠을 업으로 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생계를 위해 했던 그 일때문에 몹쓸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켠에 눈물이 고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에도 가장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기위해 현장에 나갔던 아빠는 퇴근하면 땡볕에 땀띠가 난 등을 드러내고 엄마가 타준 얼음 가득한 미숫가루를 벌컥벌컥 마시며 선풍기 바람을 쐬곤 했다. 아빠가 유독 더위에 약하다는걸 성인이 되고나서야 알았는데, 그런 아빠가 페인트칠을 조금이나마 일찍 그만 둔 것이 뒤늦게 참 고마웠다. 난 아빠가 더울 때 추울 때 힘든게 싫었다. 머리 좋고 눈치빠른 아빠가 조금 더 좋은 집안에 태어나 가족 어느 한 사람의 지지라도 받았다면 아빠는 저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집안에 필요한 것들은 아빠가 종종 뚝딱뚝딱 고치거나 만들었다. 현관문과 방문마다 붙여놓은 말발굽, 싱크대 선반, 수납장, 고장난 방문 잠금장치까지 아빠 몫이었다. 집안 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게를 하는 엄마를 도와 아빠는 가게에 고장난 냉장고, 선풍기, 수도, 형광등, 바람막이 설치까지 무엇이든 보이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가을에 오래된 가게의 천막이 삭아 비가 새는 것을 보고 비가 그치자마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천막 위를 다니며 시멘트를 발랐던 아빠가 생각난다. 약해진 포장을 다른 천막으로 메우고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손에 시멘트를 발라 꼼꼼히 펴바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왜 높은데 올라가서 위험하게 그러느냐'며 불안한 마음에 사다리를 꼭 잡고 있었다. 그냥 사람을 불러 해결하면 될 것을 왜 위험하게 직접 나서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절약이 몸에 베어있던 아빠에게 그것은 분명 불필요한 소비였을 것이다. 



   얼마 전 엄마가게의 냉장고 지지대가 말썽을 부려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아빠가 있었으면 금방 해결했을걸.' 

   오래된 가게의 물건들이 하나 둘 고장날 때마다 투박하고 두꺼운 손으로 뚝딱뚝딱 고쳐주던 아빠가 생각나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자리에서 17년 넘게 장사하던 가게에 아빠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고, 그런 곳에 다시 손길이 필요할 땐 툴툴대면서도 어떻게든 제 모습을 만들어놓던 아빠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빠에게 처음부터 쉬웠을리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뚝딱거려 제 모습을 만들었던 그 투박한 손길은 아마도 아빠가 보여주는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봄에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시장에 가 장을 봐오던 모습, 초 여름 동네 한 귀퉁이에서 파는 찐 옥수수를 보면 엄마가 좋아한다며 사와서는 무심히 툭 주던 모습, 선선한 가을날 알밤이며 더덕이며 몇 자루씩 사와 열심히 까던 모습, 한 겨울 집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고소하게 풍기던 아빠표 밥 냄새까지. '사랑한다' 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아빠표 순박한 사랑이... 참 많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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