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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pr 04. 2023

2. 아름다움에 기뻐함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 착시에 속은 것에 대한 반성문 


  벚꽃시즌이 왔나보다.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하고 뉴스며 SNS며 세상 모든 곳은 봄꽃을 자랑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주말마다 목적지를 가릴 것 없이 도로는 꽉 차기 시작했고 '봄꽃놀이'가 목적이 아닌 나같은 사람들에겐 이러한 들뜸이 유난스럽고 거추장스럽다. 전 세계가 4년동안 마스크에 갇혀있다 이제 막 해방되었고 때마침 찾아온 맑고 따뜻한 봄은 코로나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기에 딱인 날씨인가보다. 



  어쩌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여의도 근처에 살다보니 다른 계절은 몰라도 봄의 시작은 누구보다 빨리 체감할 수 있다. 관광버스가 보이고 파스텔톤의 옷을 입은 예쁜 커플들이 시끌벅적 많아지기 시작하면 이 곳에 곧 벚꽃이 만개할 것임을 경험상 알 수 있다. 평생을 도시에 살아 나무라던가, 꽃이라던가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나는 필 때가 되서 피는 꽃이 뭐 그리 대단한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늘 남의 집 담장의 나무를 보듯 슥 지나치곤 했다. 이 많은 인파는 언제 다 돌아갈까, 언제 조용해질까, 언제 조용한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식의 극도로 냉정하고 현실적인 생각이 더 익숙했다. 



  '하... 또 시작이네.'

  단골 헤어샵에 가기위해 여의도로 들어서서는 왜인지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벚꽃철이라 사람이 몰릴 것을 알았기에 주말 아침 제일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고 길을 나섰는데, 관광버스며 인파며 시끌벅적한 무언가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또 길이 막히겠지, 또 북적북적 사람들의 소음의 들리겠지, 새치기하는 얄미운 차가 있겠지. 꽃은 이 동네만 피는 것인가.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요즘, 꽃 구경을 나온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었다. 




 


  잠시 신호가 걸려 짜증섞인 발놀림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 어느 도로벽 코너에 홀로 솟아난 벚나무. 질서정연한 가로수길이 아닌, 사람도 잘 없는 어느 구석탱이의 벚나무가 하얀 눈발같은 꽃잎을 날리며 외롭게 봄을 축하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는 까맣게 그을린 피부, 주름 가득한 얼굴과 손, 구부정한 허리, 낡고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없는 천진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 위로 흩날리는 꽃잎과 등 뒤에 서 있는 단 한 그루의 벚나무를 배경삼아 아름다운 봄날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연세가 많아보이시는데 핸드폰 사용법은 익숙하실까? 다른 사람이 찍어드리면 더 좋은 배경을 담을 수 있을텐데. 큰 길에 나가면 더 많은 벚꽃이 있는데 왜 이 구석에서 찍으실까?' 









  젊은 사람에게도 소중하다 못해 잡아두고싶은 이 봄날이 저 분에겐 몇 배는 더 간절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진하게 남은 주름과 굽은 허리와 수수한 옷차림의 할아버지는 (내가 감히 그 분의 삶을 예상할 수 없지만) 분명 긴 생을 살아오며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고단함과 버거움이 많았으리라.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노년의 어르신이 활짝 핀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기뻐하며 서툴게 셀카를 찍는 모습에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마음껏 기뻐하는 순수한 마음.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그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 예쁜 것을 보고 애정어린 눈길을 줄 수 있는 마음. 나보다 몇 배는 더 긴 생을 사셨을 그 어르신이 눈물나도록 맑고 깨끗해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앞으로 몇 번의 벚꽃이 남았을 지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사랑하는 누군가와 누릴 수 있는 꽃철이 몇 번이나 남았는지 알 수 없기에 더 이상 봄날의 축제가 소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젊은 친구들이 보면 각도가 엉망인 셀카를, 아마도 할아버지는 찍으셨을 것이다. 꽃잎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렸을 것이고, 여의도인지 베란다의 오래된 고무나무인지 알 수 없는 기둥같은 무언가가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4월 아주 맑고 따뜻하고 하얀 꽃잎이 날리던 여의도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구석에서 사진을 찍으실만큼 그 순간이 소중하셨겠지. 



  때론 나의 젊음이 두 눈에 착시를 일으키는 것 같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처럼 느끼도록, 나누는 것을 잃는 것처럼 느끼도록, 설레는 마음을 유난스럽게 느끼도록. 아빠의 영면으로 영원함이 없음을 배웠으면서도 나는 바보처럼 그것을 또 잊었다. 또 다시 착시에 속지않겠다 다짐하며. 오늘은 엄마 손 꼭 잡고 봄밤의 산책을 해야겠다. 아름다움을 간직하는데 나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어쩌면 나보다 1분 1초가 더 소중할지도 모를 할아버지의 함박웃음에 마음이 찌릿하다. 이렇게 또 인생을 배운다. 

 



유난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시끌벅적했던 2022년 벚꽃시즌의 마지막 주말, 마음이 아리도록 화창한 봄날을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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