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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할 수 없는 일

by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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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1]


누구든 살아가면서 그냥 지나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 혜택을 받은 인간은 그 고마움을 인정하러 하지 않고 흘려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되는 일이 아닌데 하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많고, 이런 경우가 몇 번 일어나면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하게 된다. 고마움을 모르게 되고, 또 고마운 일이라도 누구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 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이 인생이고, 자신이 땅을 짚고 일어서는 중요한 기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일어서면 그 전의 일을 잊어버리게 되고, 다 자신의 능력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을 운으로 돌리게 되고, 참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하면서 그 골짜기를 넘어 가기도 한다.


절대자를 믿는 사람은 그 절대자의 힘으로 일어서게 된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여길 줄 안다. 그래서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종교이고 신인 줄 모르겠다. 지구에 생명이 나타난 이후에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들은 그 고마움을 모두 표현을 할 수 없으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종교까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고마움을 마음의 한 부분에 넣고 삶에 힘이되도록 간직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가 노력형이라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일을 꽤 빠르게 끝내는데, 나의 경우에는 더 많은 노력을 한 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경험에 의하여 알 수 있었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만큼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기 시작하였고, 실제로도 많은 노력이 나를 키우는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몸 자체가 재산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경쟁자들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될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출근하기 전에 헬스클럽에 가서 한 시간 넘게 운동을 하고 사워를 마친 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출근하고, 그 여력으로 학교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1995년에 대학에 자리 잡고 그 다음해 일본 츠쿠바의 식품총합연구소에 1년간 국비로 포스터 닥을 끝내고, 97년 가을에 복귀하여, 이때부터 헬스클럽에 운동하고 출근했으니까, 퇴임할 때까지 26년 정도를 매일 운동하면서 체력을 지켜온 셈이다. 미국 보스턴 연구교수 시절에도 헬스클럽에 다녀와 출근했다. 그래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밤새워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결과를 내고, 대학원생을 길러내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어떨 때는 뇌가 삐거덕거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경우에는 많은 논문을 읽기도하고, 때로는 자학으로 머리를 치곤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은 결과를 얻어 내기위해 무진 노력을 해왔다. 그러면서 내가 교수를 해도 될까하는 심한 오열도 삼키기도 하였다.


그래도 하면 되는구나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파왔던 것 같다. 그러다 재임기간에 다 못한 것은 회사를 설립하여 계속해보자는 마음으로 많은 특허와 논문과 관련회사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정년을 10년쯤 앞두고 종합 검진을 하였더니, 복부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대로 두면 파열되어 극한상황을 불러 올수 있다고 하여,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정으로 스텐트를 그 자리에 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아오던 중, 스텐트 한 부위가 다시 혈액이 고여 위험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아주 화가 났다. 스텐트는 한번 심으면 제거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스텐트를 심은 부위, 대동맥 전체를 인공혈관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대동맥은 심장으로부터 하지로 내려가는 혈관이고, 복부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어져 하지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이다. 문제는 복부에서 갈라져 양쪽으로 나누어지는 부위까지 스텐트를 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 한다는 일은 생명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시술한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수술은 불가능하니 어디든지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라는 말 뿐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해부학 책을 펴놓고 복부 대동맥을 다시 살펴보니 기존의 스텐트를 제거 한다는 것은, 그 스텐트 한 부위를 잘라내지 않고는 방법이 없단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매일 폭탄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교 동문들이 백두산 여행 간다고 해서 회비를 다 내고 출발일자를 기다리는 중이어서 더 애가 타올랐다. 간다하더라도 폭탄이 여행 중에 터지면 모든 동료들을 힘들게 할 것은 불문가지여서 못 가게 되었다고 통보를 했다.

거기다가 이제는 우울증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내 인생의 끝인가에 생각해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고, 그토록 운동을 열심히 해온 결과가 이렇다고 생각하니 그 삶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스텐트 부위에 여태까지 모르고 있을 때는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알고 나니 그 부위에 통증이 생기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CT를 찍고 전문 담당교수가 오더니, 혈관을 기울 수 있는 전문 의사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방 의과대학 병원이 그만한 기술이 없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련이 남아서 인터넷을 뒤져 공부를 했다.

아주 위험한 수술이지만 수술을 하는 곳이 서울이대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대병원 등을 검색할 수 있었고, 그 중 한곳으로 여태까지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찍은 CT를 가져가 진료를 받았다.


그 교수님이 나의 히스토리를 듣고 나서, 아주 희망적인 이야기를 제시하였다. 복부의 상황을 열어보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스텐트 부위를 모두 잘라내고 인공 혈관을 심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교수님은 CT를 가만히 살펴보니 스텐트를 잘라내지 않고 생각보다 간단한 수술로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근거로 스텐트의 재질 상 혈액이 샐 수 없고, 단지 그 부위에서 혈액이 스며나오는 것 같아 그것만 기우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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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2]


다른 병원에 더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크고도 많은 고민을 그렇게 간단히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에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과, 이렇게 복잡하고 생명이 걸린 일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니 분명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하는 깊은 생각을 한다.


원래 수술 시간을 8시간으로 예정하고 복부를 오픈 했더니, 처음의 판단과 거의 틀린 것이 없어 4시간 정도의 수술로 마무리 했는데, 혈액이 부풀어 오르는 부위에 석회질이 있었는데 그것을 제거하니 여태껏 압력을 받고 있던 부위에서 혈액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고 하면서, 이것이 터졌다면 장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나를 보고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것은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은 운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대동맥을 모두 인공혈관으로 대체한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공포스럽고 실망스럽겠는가. 복부를 개복하고 인공혈관을 이식한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술은 성공해도 인공 혈관의 이식, 또한 이 과정을 통한 오염 등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슨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다른 병원에 갔으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의 일이라면 나보다도 더 열심히 다른 병원을 찾았을 것으로도 생각한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 복부부터 하지까지 연결되어 있는 혈관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라, 수술 하면 된다는 생각보다, 그냥 생명은 하늘에 맡기고 수술대에 올라 운이 좋으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끝이 되기 때문에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성공률이 낮다는 의미는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머지 일들, 오염에 의한 복막염으로부터 패혈증,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는 요인들로 성공의 확률이 낮아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술이 되고 있다. 혈관을 제거 하고 난후 새로운 인공 혈관을 대체하기까지의 빈 시간 등이 나에겐 아주 무거운 스트레스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까지 한 달이 남은 시간에 그 스트레스는 극에 도달하고 그래,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다 잊고 편안하게 맞이하자는 생각으로 전환하고 명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 출근하여 될 수 있는 한 이 일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수술 일자를 좀 당기면 안되겠느냐는 연락도 해보았는데,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까만 생각을 되돌아본다.


그 뒤 고교 동기들이 진양호 둘레길을 간다기에, 수술 후 한 달 만에 참여하여 동기들을 보니 살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하여 너무 감사함을 느꼈다.


그 후, 광복절 연후가 끝나는 일요일에 집사람 일터에 가다가 큰 교통사고가 났다. 상대방 차가 주차 금지구역에 주차하고 있던 차량을 받아 상대방 차량이 폐차될 정도로, 나 자신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병원 몇 곳을 들러 CT, X-ray 등을 찍었는데, 찰과상으로 많이 다치고 많은 피를 흘렸으나, 뼈는 어느 곳도 부러지지 않는 보살핌을 받았다. 바로 입원한 2일 정도는 찰과상의 통증 외에 별다른 통증이 없어 퇴원하고 수요일 출근 했는데, 이때부터 생각지도 못하는 고통이 찾아 왔다. 고통이야 참을 수 있고, 참고 근무를 할 수 있지만, 이 기막힌 고마움을 누구에게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에 인간적인, 심적인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고 당시 경찰, 119 구조팀, 길가는 사람들의 ‘저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는 고함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사고 주위에는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이렇게 뼈 하나 상한 곳 없이 나를 돌려 준 그 누구에게 이 감사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아직은 부자유스럽지만 생명을 지켜주신 님께 감사한다.


확실한 것은 이 일들은 모두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너무도 감사하고, 나를 지켜준 분은 아마도 절대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그 고마움을 아로새기고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깊은 마음으로 정성으로 삶을 지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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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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