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는 공포의 발표 수업. 그 발표를 위해 교탁에 선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박수를 치는 학생들.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학교 선생님이 수업을 나갈 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진도이다. 중간의 과정이 어떠하든 결국은 시험이라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업 진도를 조절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수업 시간이 많이 있거나(일주일에 들어가는 시수가 많은 경우), 맡은 반의 수가 적다면 상대적으로 반끼리의 진도를 맞추고 조절하는 것이 쉽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무려 10개의 반을 담당하고 있는 데다가 일주일에 고작 두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도가 한번 틀어지게 되면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내가 항상 수업 진도를 어느 정도 맞추어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활용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훈련(이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다.)들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나의 그런 중간 쉬는 시간들을 즐거워해주었고, 그 덕분에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아이들과의 대화 시간도 많이 늘려갈 수 있었다.
맡은 반이 10반이나 되다 보니 필연적으로 장난을 많이 치는 꾸러기반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맡은 반 중에서 특출 난 꾸러기반은 두 반이었는데, 어느 날 그 두 반 중에서 하나의 반 학생들이 재미있는 의견을 내었다.
"선생님, 저희 중간고사 끝나고 뭘 하나요?"
"저번에 말했던 활동들을 해볼까 하는데 왜 그러니? 혹시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니?"
"그럼 저희 발표수업하면 안 돼요? 애들이랑 요즘에 유사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걸 정리해서 발표해보고 싶어요!"
"저도 요즘 지구 평평설을 보고 있는데 발표해 봐도 되나요?!"
"요즘 대세는 지구 도넛설이라고!"
"아냐, 요즘은 지구 공룡설이 있어. 우리나라는 공룡의 손가락쯤에 있다니까."
아이들은 조잘조잘 신이 나서 떠들며 내게 발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요즘 생각하는 것들부터 지구보다 늦게 죽는 방법, 양자 역학, 지구의 자전이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등등 굉장히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꺼내며 발표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칼같이 바로 수업만을 나갈 수가 있을까? 하지만 반마다 주어진 시간은 같았고, 아이들이 발표 수업만 하기에는 진도의 문제가 있었다. 잠깐의 고민을 마친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회장이 발표하고 싶은 친구들 명단을 적어서 선생님께 주고, 모든 시간을 발표할 수는 없으니까 수업을 조금씩 나가고 뒤에 발표를 1, 2명 정도씩 나누어서 하기로 하자. 대신 진도를 나갈 때에는 선생님 말에 집중해서 부지런히 잘 끝내는 거야. 약속할 수 있지?"
"좋아요!"
"네!!"
"그리고 일단은 시험이 먼저니까 지금은 시험 준비에 먼저 힘쓰자. 알겠죠?"
"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된 수업 계획이 마음에 들었는지 부지런히 발표 명단을 적으며 눈앞의 시험을 준비했다.
이후 중간고사가 마무리되고 나서 아이들은 신이 난 상태로 피피티를 가지고 와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피피티를 보여주었다. 중간에는 친구들의 사진이 들어간 예시를 들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거나, 영어로 발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예상보다 피피티가 잘 열리지 않아 늦어진 일정들도 있었지만 발표를 원한 학생 모두가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온 것인지, 발표를 들으면서 뒤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아이들은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것들이라고 대답했다. 그걸 학교 수업시간에 해보겠다고 스스로 도전하는 모습이나, 끝까지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어주는 아이들이나 모두 한결같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해진 시간 동안 수업을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쉬울 수도 있다. 게다가 발표 내용은 수업과 연관성보다는 아이들의 흥미가 더 많이 담긴 내용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흔히 말해 '쓸모없다'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도전하겠다고 피피티를 준비해 보고 발표 내용을 정리하며 앞에서 말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쓸모없는 짓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나의 수업에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다며 기꺼이 손을 드는 그 자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앞에 나서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고, 때로는 듣기 싫은 것들을 들어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기에, 이 모든 일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 그 반만의 재미있고 독특한 교육과정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어떤 반에서, 어떤 생각도 못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생기게 될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아이들이 조금 더 즐거운 수업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렇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수업을 꾸려나가야겠다.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금은 말랑한 수업으로, 그렇게 꾸려가야겠다.
언젠가 만들어질 재미있는 교육과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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