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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Mar 01. 2024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

첫 외부 봉사활동라니


"후우.. 드디어... '그' 옷을 꺼낼 차례인가.."



옷장 앞에 서서 비장한 표정으로 샛노란 옷을 꺼내는 선생님. 그 선생님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이들과 1년을 지내다 보면 긴장되는 시간들이 종종 생긴다. 그 시간들은 대체로 안전과 직결되는 활동들이며, 그것이 외부활동일 때는 더 극 예민보스로 들어서게 된다.



"외부 봉사요? 그게 뭐예요?"



봉사라니, 나도 학생 때 있어봐서 안다. 하지만 우리 때는 외부기관에 알아서 가서 봉사시간이라는 것을 채워오는(그것도 무려 60시간이었다.) 활동이었지, 학교에서 뭔가를 했던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알고 보니 이제는 그런 형식적인 봉사는 하지 않고, 학교에서 지정된 봉사를 실시하게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이 봉사활동의 특별한 점은 바로,



'외부' 봉사활동이라는 점이었다.



외부? 외부우? 그럼 지금 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라고요? 저 병아리들을요? 몇 번이고 되묻는 내 질문에 선생님들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맞아요. 외부로 나가야 됩니다. 저 병아리들을 데리고요.



"어디로요..?"



이후 안내를 들어보니 다행히도(?) 모든 학년이 같이 같은 곳으로 외부 동아리를 나가는 것이었고, 순차적으로 출발해서 같은 곳에 모였다가 학교로 돌아와 해산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나가는 장소 또한 학교 근처에 흐르는 천 앞이었고, 걸어가도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외부라니. 저 어린 병아리들을 데리고 외부로 나가야 한다니. 이런 일이 언젠가는 생기겠지 싶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빠르게 생길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단 말이야! 속으로만 울부짖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외부봉사날이 되었다.




대망의 외부 봉사 날.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샛 노란색의 셔츠를 꺼냈다. 평소라면 별로 입지 않았을, 정말 완벽한 샛노란색 옷이었다. 이 옷을 꺼낸 이유는 단순했다. 외부로 나가게 되면 아이들을 한 시야에 다 담기가 어렵고,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에 잘 띄는 옷을 입어서 아이들이 나를 알아서 잘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 오늘 옷 너무 예쁘세요!"


"병아리 같아요, 선생님!"



샛노란 셔츠의 색에 아이들은 신이 난 듯 조잘거렸다. 확실히 저 멀리서부터도 어, 선생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옷 선택을 잘했구나 싶었다.



몇 번의 당부와 함께 앞반을 따라 순서대로 길을 출발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내게서 많이 떨어지지 않고 걸었다. 중간에 꺾이는 길일 때는 앞 뒷반 선생님과 협동해서 방향을 알려주었고, 길을 건너야 하는 곳에서는 신호를 잘 살펴 안전하고 빠르게 건널 수 있도록 손짓을 함께 했다.



차들도 아이들의 행렬에 속도를 줄이고 다소 긴 시간도 기다려주었다. 이것이 바로 배려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아이가 지나고 나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직 미처 덥지 않은 날씨여서인지 아이들은 신나게 조잘거리면서 목적지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방전이 되었는지 주저앉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했던 2학년 선생님들의 협의로 모든 반에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돌리며, 천 근처의 쓰레기를 줍는 봉사 시간을 시작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선물이에요."



내 수업을 듣던 남학생이 다가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꽃반지였다. 작년의 꽃다발에 이어 이번에는 평생 받아보지 못한 꽃반지라니. 나는 하루 종일 꽃반지를 끼고, 오래도록 책상 위에서 말려 보관했다.



"선생님! 저희 이제 가나요?"



쓰레기를 다 주웠는지 점차 아이들이 내 곁으로 다시 몰렸다. 쓰레기를 잘 주워서 커다란 봉투에 잘 담아 정리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기다렸던 말을 하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모여봐!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작년에는 찍을 수 없었던 단체사진. 그것을 찍기 위해 아이들을 한 데 불러 모았고, 옆 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첫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까지도 끝까지 앞뒤로 아이들의 걸음을 살폈다. 중간중간 내 걸음에 맞추며 말을 걸어오는 학생들도 많아서 그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면서도, 아이들의 행렬 앞과 뒤를 모두 살펴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자, 얘들아 교실로 올라와! 인원 체크하고 갈 거예요!"



반마다 다른 인원체크 방식이어서, 헷갈리지 말라는 의미로 몇 번이고 당부했지만 역시나 교실에 갔을 때 빠진 인원들이 있었다. 다른 반의 인원체크를 보면서 지레짐작으로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돌아와 교실로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안전이 강조되어야 하는 날에는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라서 와야 합니다. 선생님이 너희들이 다 안전한지, 잘 도착한 것인지 확인이 되어야 갈 수 있는 거예요. 알겠나요?"



짧은 잔소리와 함께 다친 인원 없이 안전히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을 귀가시켰다. 평소 깐깐하게 하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의 단호한 표정에 아이들도 뭔가를 느꼈는지 꾸벅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섰다.



마지막이 잔소리가 되어버렸지만 아이들도 이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함께 발을 맞추어 걷는 방법부터, 규칙을 지키는 방법,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 가장 중요한 안전을 위해 담임 선생님께 제대로 보고하는 방법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교무실을 나섰지만, 잔뜩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샛노란 옷에는 그 어떤 얼룩도 없었다. 그거면 됐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옷에 묻었을지 모를 먼지를 털고 기분 좋은 퇴근을 했다.



또 다른 해가 다가오면 또 노란 옷을 꺼내게 되는 시간이 오겠지만, 언제나 그 어떤 얼룩도 남지 않는 좋은 교육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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