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재윤 Nov 02. 2022

‘됫글’ 부모, ‘말글’ 부모.

하재윤의 회상

‘됫글’ 부모, ‘말글’ 부모.     

부제- 하재윤의 회상.


글쓴이 주: 다음 블로그가 종료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던 옛글 몇 편을 옮겨왔습니다. ‘하재윤의 회상’이라는 부제로 몇 편 올려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2016년 11월, 큰딸아이를 수능시험장까지 바래다주고 오면서 느낀 생각을 적었습니다.


'됫글 부모'와 '말글 부모'는 할아버지께서 선친께  하신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가 만든 단어입니다.




2017학년도 대학 수능시험일 당일입니다. 딸아이가 고사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딸아이의 고사장은 부산 명장동 학산여고입니다. 학산여고 정문으로 가는 길은 좁고 가파른 비탈길입니다. 나는 ‘시시골’이라 불리는 옛 골목길로 연결된 뒷문으로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내가 잘 아는 길입니다.


문득 딸아이의 뒷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츄리닝 차림으로 가방을 둘러메고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수험생 딸아이의 뒷모습이 아빠를 눈물짓게 했습니다. 딸아이 옆에 같이 있었어야 할 아들이 생각나서요.


선천적 지적장애를 동반한 채 태어난 아들은 쌍둥이 여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에 입학하던 해 봄에 경북 김천 성요셉 마을로 떠나 혼자 독립했습니다.     

아들을 성요셉 마을로 보내고 찾아온 공허한 슬픔이 나를 옥죄었습니다. 내 품에서 아들을 떠나보내고 첫 해를 보내는 동안 나는 친구도 선배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딸아이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 가방을 멘 딸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방을 메고 같이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고2년생들이었습니다. 299명. 열여덟 꽃다운 어린아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아이들은 2015년에 고3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학년으로 치면 딸아이보다 한 학년 선배들이었습니다.


한 해 전, 세월호 아이들의 친구들이 수능을 맞았을 때, 이미 세상에 없는 아들딸들을 생각하며 오열하던 세월호 엄마 아빠들이 생각납니다.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저보다 한두 살 많거나, 어리거나, 동갑내기 엄마 아빠들도 있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아이들을 잃은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마음은 저보다 천만번 더 아팠을 겁니다. 저는 가서 만나보고 올 수 있으니까요.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여보고..

아이를 만져보고 싶을 때 만져볼 수 없는 아픔은 설명되어질 수 없는 부모의 아픔입니다.     

딸아이를 수험장으로 보내고 돌아오다가 감정이 북받쳐 차 안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지금의 나처럼 선친은 감정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자주 눈물을 보이시곤 했지요.

선친은 1926년 병인생이십니다. 마을 서당에서 동몽선습을 깨치고 더 큰 서당을 찾다가 늦은 나이에 면(面)에 하나씩 있던 ‘국민학교’를 끝으로 선친은 더 이상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당신의 어린 큰아들에게 아비는 ‘됫’ 글 밖에 못해줘도 니가 ‘말’ 글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친은 옛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메는지 자주 눈물짓곤 하셨습니다.     


일제의 수탈로 처참해진 경제 질서 아래서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던 우리 할아버지들은 내 논에서 내 힘으로 지은 쌀 한 톨조차 내 마음대로 가질 수가 없었지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도 군산 미곡창고에서 일본으로 실려 나가던 쌀을 나르던 조선 백성들이 쌀 몇 톨을 숨겨 나오다 일본 순사에게 능욕을 당하는 치욕의 장면이 그려지고 있는 바,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던 그때는 나라가 없어진 마당에 각자 하루하루 끼니를 잇는 것 외에 미래를 위해서 아이들을 공부시킨다는 것이 언감생심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도 그렇듯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나라가 있으나 없으나 금쪽같은 내 자식에게는 옥이야 금이야 ‘말글’을 쏟아붓는 부모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할아버지들은 ‘됫글’밖에 못해주는 ‘됫글’ 부모였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됫글' 밖에 못해주신 나의 할아버지도 '말글'을 못해주는 자신이 미안해서 '말글'을 만드는 것은 아들의 몫이라고 속으로 울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해방 이후 70여 년이 흘러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된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됫글’밖에 못해주는 부모와 ‘말글’을 해주는 부모로 나뉘어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말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제도권 학교 교육 외에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자유롭게 보내주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가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아버지인가.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무한정 지원해 줄 수 있는 아버지여야만 제대로 된 부모인가.      


‘됫글’부모인 나는 딸아이에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승자가 되지 못한 나 자신이 ‘됫글’ 부모임을 숨기고자 하는 속 좁은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내가 제대로 된 부모인가라고 묻습니다. 그건 아이들이 자라면서 증명해 줄 거라는 선배 박봉한 형의 대답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수능일 당일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참으로 강렬했습니다. 앞으로 딸아이에게 다가올 힘든 짐들이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경제적 패자의 업보 같은 것은 아니기를 빌었습니다.     


나는 궁금합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평등을 외칩니다. 좋은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현실은 여전히 ‘말글’부모가 낳은 ‘금수저’와 ‘됫글’부모가 낳은 ‘흙수저’들로 나뉘어 불리고 있는가. 이것이 참 궁금합니다.     


2017학년도 대학 수능시험에 딸아이를 들여보내고..


2016년 하재윤 씀.     

작가의 이전글 일호형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