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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Sep 29. 2022

태생적으로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았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하여>

     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갑자기 왠일인가 싶어 회의실로 들어가니 기존에 하던 일을 인수인계하고 새로운 일을 맡으라고 했다.


     "지금 새로 시작해야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꽃비 과장이 A를 맡아줬으면 좋겠고, B는 아마도 다른 사람이 하게 될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솟구쳐 올라왔다.

팀장이 말한 B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너는 해당 사항이 없고, 무지하게 힘들고 머리 아픈 A가 너에게 적합하다고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 어디에도 이런 의미가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회사를 옮기고...

경력으로 입사하여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매번 반복되는 일이었다. 쉽고 편한 일보다 언제나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 나에게로 왔다. 그렇게 너는 경력으로 입사한 이 회사에서 순혈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들렸다.


     "A보다는 B를 하고 싶습니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제가 B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역시나 이번에도 아무말 없이 그 일을 받아들일 줄 알았나보다. 매번 고분 고분했던 놈이 예상치 못한 반격을 가하자 팀장은 적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일단 알겠다며 나를 되돌려 보냈다.


     정치 싸움이 시작됐다.

도대체 이까짓게 뭐라고,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하기 시작했다. 가뭄에 콩 나듯 좋은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여기 저기서 타이핑 소리가 커지고 컴퓨터 화면이 반짝거리며 사내 메신저로 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서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를 포함한 이곳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조직 생활의 환멸감이 더욱 짙어지고 있을때, 이번에는 니가 B를 맡으라는 팀장님의 오더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최악의 선택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업무를 이끌어갈 차장님을 필두로 비어있던 자리가 하나 둘씩 채워지며 인원이 구성됐다. 이젠 새로운 사람들과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차장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숨어 업무 시간에도 휴대폰만 보고 있었고 자신이 해야될 일을 나에게 시켰다. 그렇게 어려운 난제를 안고 몇 일동안 끙끙대며 겨우 해결책을 찾아내면 그것을 그대로 정리해준 자료를 들고 임원에게 보고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부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를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었고 뛰어난 리더쉽을 가진 상사가 됐다.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놀고 먹었다.


     해외 출장때도 마찬가지였다. 준비할 여력도 없이 급하게 잡힌 출장이라 주말까지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고 겨우 회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는 관광하고 술마시며 놀 생각에 신이나 있었다. 그 인간의 머리 속에는 회의에 대한 부담감도 그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은 내가 할테니 본인은 그저 먹고 마시고 놀면 그만일 뿐이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호텔에서도 펍에 가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렇게 첫날부터 펍에 끌려갔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매일 술을 마셨고 같이 장단 맞춰주는 것도 출장 중에 내가 해야할 일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녘에 호텔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그날 회의 결과를 정리한 뒤 자료를 보다 나도 모르게 지쳐 잠들었다. 14일 동안 매일 이런 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내 위가 걸레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와~ 위가 걸레가 된것 같다."


     그 차장은 아무런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이 말을 들은게 분명했다. 그날부터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관광 가이드까지 하며 아주 엿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만 투덜거렸다.


     "너는 이렇게 먼 거리면 택시를 타야지 걸어가니."


     "여긴 별로 먹을게 없어. 그냥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야 그러지 말고 여기 어디 한식당 없는지 찾아봐."


     사람에 대한 환멸을 또다시 느꼈다. 도대체 얼마나 어마 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면 저런 막돼먹은 개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런 갑질은 출장에서 돌아온 뒤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말 한마디, 보고서 한장에도 시비를 걸었다.


     "능력도 없는게 얼마나 일을 해봤다고 이걸 이렇게 들고와."


     이 지랄을 모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뱉자 밑에 대리가 슬쩍 물어본다.


     "과장님, 출장가서 차장님하고 무슨일 있으셨어요?"


     "하하, 일은 무슨 일이 있었겠어. 별일 없었어."


그 사람은 얼마전 임원으로 승진했고 여전히 회사를 잘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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