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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Oct 12. 2022

불안정 애착, 희망의 빛이라는 착각 (2)

<애착 형성과 애착 유형>

     나는 그렇게 그녀의 연인이 되었고 그 밤의 분위기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생각만 해도 애틋하고 가슴 터질 듯한 연인이었기에 아까운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만 옆에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했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기에 나의 존재가 무가치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희미 해져갔다.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휘감는 5월,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그녀에게 향하는 길은 화창한 5월의 날씨만큼이나 밝고 아름다웠다. 전라도에서 인천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혼자 있을 땐 항상 날이 서 있던 날카로운 예민함이 무딘 쇠뭉치가 되고, 그땐 전혀 몰랐던 내 안의 불안이 물안개 사라지듯 희망의 빛이 되어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온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가 나보다 더 소중했다.

     오랜 시간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하면 항상 같은 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며 반갑게 흔들던 보드라운 손을 잡고 연녹색 녹음이 우거지고 지천에 봄꽃이 널린 꽃길을 걸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던지 서로 얼굴만 봐도 까르르 웃고 맞잡은 손을 내지르며 공원을 걷다 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적당한 햇빛과 바람에 둘러싸인 채, 챙겨온 도시락을 나눠 먹고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녀의 살내음을 느끼며 밑에서 올려다본 그녀의 눈엔 한 점의 여백도 없이 내가 그득 차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속엔 내가 한 가득이었다. 이렇게 우린 서로의 시간을 함께하며 대학로를 걸었고, 낙산 공원의 성벽 위에 올라 서울 시내 야경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고창 읍성의 싱그러움과 빽빽한 대숲 아래 사랑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나갔다. 


     근무지였던 지방에서 인천으로, 때론 서울로 오갔던 그 길이 고되고 지난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체력적 비루함을 가져왔을망정 마음을 지치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그녀를 소중히 여기며 살던 그때 뭔가 결심한 듯,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응 뭔 데? 무슨 일 있어?”


     “나, 다시 공부하고 싶어.”


     “공부? 무슨 공부?”


     “다시 수능 보고 싶어. 어릴 적에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반대하셨거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하고 싶어.”


     마음을 다해 응원해줬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꼭 원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랐다. 공부를 시작하면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도 힘들겠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꿈이 먼저였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을 듣고 나자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수능을 보려면 공부에만 전념해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시간들 동안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은 서로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축하해. 오늘은 자기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야. 우리 축하 파티하자.”


     “흐응~ 조금 겁나”


     “뭐가 겁나아. 괜찮아. 잘할 수 있어. 근데 자기야,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말해 주길 바랐다.

어떤 대답이 됐건, 어떻게 해야 우리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꿈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랐으나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자신의 길을 떠났다. 


     평소에도 연락이 잘 안되던 사람이었다.

출근은 잘했는지, 밥은 챙겨 먹었을까 싶어 수시로 연락해도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그냥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며칠간 연락 없이 지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녀는 연인과의 감정선이 조금 희미해져도 대수롭지 않았던 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일정 시간 연락이 닿지 않으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들던 조급함은 커다란 두려움이 되고 종래엔 불안이 되었다. 그래서 연락이 되지 않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조금만 배려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 뒤 한동안은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혼자 남고 말았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연락을 하면 그녀에게 방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누르며 참고 견뎠다. 그 상황에서도 그녀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만 생각했다. 사방이 꽉 막힌 책상에 앉아 온종일 공부만 하고 있을 그녀에게 시간의 흐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산을 좋아하던 그녀에게 사계절의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산에 오르며 사진을 찍고 꽃잎을 따고 단풍을 줍고 흙을 주워 담았다. 그렇게 모인 꽃잎이 책 사이에서 예쁘게 말라가고 빨갛고 노란 단풍과 정상에서의 흙이 수북이 쌓여갈 때쯤 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그래서 사진과 함께 잘 마른 꽃잎, 단풍을 담아 좋은 성적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보냈다. 그 후 얼마 뒤 전화기가 울렸고 밝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한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다림에 대한 선물이었는지 그녀가 합격한 학교는 내가 있던 곳과 매우 가까웠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기운이 슬며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자 새 학기에 맞춰 그녀가 내려왔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행복감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 보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학 계열, 즉 한의대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미 그녀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현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새학기가 시작되자 빽빽한 수업과 함께 한의학 고서를 공부하는 동아리 모임에 그녀는 어떤 시간도 낼 수가 없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학업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그녀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연인과 멀어져만 가는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언제인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처럼 다시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결국 그녀에게서 더 이상 받을 수 없던 안정감의 결핍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잠재의식의 불안을 폭발시켰고 이것은 모든 것을 최악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그날도 어김없이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였다.

함께 모여 경옥고를 만들고 공부한다고 했다. 사흘 밤낮을 고아야 좋은 약이 될 수 있다며 합숙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 말만 전하고 또다시 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잘 있는지 궁금해 전화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그렇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쳐다보다 가슴이 불에 데인 듯 뜨거운 열상이 느껴졌다. 정말 너무 마음이 저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와 함께 폭발한 분노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픈데 경옥고를 만들고 공부한다던 사람들이 놀러 간 듯 서로 장난치고 웃고 떠들며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가슴은 잿더미가 됐고 그녀에게 남은 한 오라기 실 같던 나에 대한 마음도 녹아 버렸다. 그렇게 그날,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이제 연락 자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이건만 그녀만은 내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을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죽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헤어짐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느끼며 덕유산 정상에 함께 올랐던 어느 여름날, 찬란한 은하수 아래 네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했었다. 내가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너의 행복을 찾아가라고 했었다. 그래서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문자 말고 꼭 내 얼굴을 보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무색하게도…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는…


문자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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