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 Oct 14. 2022

불안정 애착, 희망의 빛이라는 착각 (3)

<애착 형상과 애착 유형>

     꿈속을 헤맨다.

앙증맞은 손과 환한 미소, 은은히 퍼져오는 그녀의 체취에 엄마 품의 젖먹이처럼 평온함을 느낀다. 온몸을 가득 채우던 젓 비린내 나는 평온함이 진득거리는 땀이 되어 깨고 싶지 않은 꿈에서 깨어나면, 몸서리 처지는 아쉬움에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방안의 냉기가 가슴속으로 짓쳐 들어오면 그 서늘함이 가슴의 구멍이 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청소를 하다 언제 숨어들었는지 모를 기다란 머리카락이 나오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온몸을 후비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머리카락을 치우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을 때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와 나 사이는 회사 동료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어떻게든 사내 연애인 것을 밝혀내겠다는 사람들의 열정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 뒤에도 이 끈질긴 관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진짜 몰랐던 것인지 그녀가 퇴사한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소식을 나에게 전했다. 헤어진 지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아 남자친구가 생겼다 했고 일 년이 지나지 않아 결혼한다고 했다. 상대는 같은 학교 학생이고 그녀처럼 회사에 다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던 부잣집 아들래미라 했다. 그리고 청첩장을 주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온다고 했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이익이 개입될 때는 그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그곳에 남아 이별의 고통에 괴로워하던 나를 염두에 둘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인생 최고의 날, 얼마나 많은 하객이 오는지 그래서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지 않는지가 중요했을 것이다. 사무실 동료들이 청첩장을 받기 위해 그녀와 저녁을 먹기로 한 날,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같이 갈 건지 묻는 녀석이 있었다. 


     그 말투를 곱씹으며 뻔히 들여다보이는 변명을 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날 후배를 만났다. 우리 사이를 다 알고 있던 후배 녀석을 앞에 두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 술잔만 비우다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에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를 보더니 후배 녀석은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엉망인 채로 그런 녀석을 쳐다보다 내 손 위에 얹혀 있던 후배 손을 슬며시 맞잡았다. 그날 그 손은 최악을 향해서만 달려가던 내 인생을 잡아끌었다.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던 그녀의 청첩장이 결국 모바일로 내게 날아왔다. 절대 열어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청첩장 속의 그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하려 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수많은 상처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을까?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혼자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항상 무언가 그득 찬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듯 답답하기만 했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연애는 힘들기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도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다 비슷해 보였다. 사소한 친절과 우연에도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 쉽게 마음을 줬으며 한번 열린 마음은 스스로 닫히는 법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 존재 가치가 무의미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최우선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강한 믿음만큼 나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항상 이렇게 사랑했다. 말도 안 되는 사랑을 한만큼 상처의 크기는 컸다. 그러나 상대방에게서 느꼈던 심리적 안정감이 절대적이었기에 어떤 경우에도 힘든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정적이었기에 나보다 너무 멋진 그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내 전부를 걸었다. 이젠 내가 되어 버린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상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만이 불꽃처럼 터져 오르던 불안을 잠재우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왔다. 혼자되는 게 두려워 내가 모르는 상대의 일상을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이렇게 그녀의 곁에서만 얻을 수 있던 나의 평온함은 관계의 칼날이 되어 굵고 단단했던 인연의 붉은 실을 그보다 더 진한 핏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시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고 항상 사랑이 고팠던 마음속의 허기짐은 사소한 웃음과 따뜻함에도 운명과도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불안정 애착은 꽃다운 청년의 연인을 앗아갔고 아름답고 따뜻해야 할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로 만들어 놨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 상처를 안은 채 홀로 살아가고 있다. 


불안정 애착은 사랑이 아니다. 

혼자 남겨지고 버림받았던 무의식의 상처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 애착은 그게 사랑이라고 울부짖어도 종래엔 비정상적인 관계의 아픔만 남을 뿐이다. 그 어떤 사랑도 상대방의 온전한 희생과 아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런 사랑의 방식을 강요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본 “멜랑꼴리아”라는 드라마에서 잊을 수 없는 대사가 있었다. 그 대사처럼 사랑이라는 것에 온전히 마음을 쏟게 되면 그 사랑은 철저히 나를 파괴한다.


     “미치도록 풀고 싶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가 있지. 앞으로 수학을 하게 되면 그런 문제들을 계속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뭔가에 너의 마음을 온전히 쏟는다는 건 너를 잃게 되는 일이기도 해. 너를 파괴하고 다치게 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으면요?”


     “찾지 마. 문제가 널 찾아낼 거야. 다치지 않고도 풀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강해졌을 때. 난 언젠가 승유 네가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드라마, 멜랑꼴리아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불안정 애착, 희망의 빛이라는 착각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