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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Mar 30. 2024

2-10. 내가 자살할 수 없는 이유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살 충동이 몰려올 때가 있다.

안전벨트를 풀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거나, 수백 알의 아티반(벤조디아제핀)을 한 번에 밀어 넣으면 지금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질 듯한 강한 끌림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방식이 됐건 실패하지 않고 고통 없이 스스로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나를 휘감는 절망은 환희의 열망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시동을 끄고 모아둔 약을 쓰레기통에 내팽개치며 여전히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버틴다. 무엇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가? 무엇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가?


차디찬 냉기가 서리던 10월의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엎드려 있었다. 숨이 턱에 찬 채 미친 듯이 짓쳐 들어가 방문을 여니 몇 주 전까지 나와 얼굴을 마주했던 아버지가 웅크리고 있었다. 방바닥엔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있었을 소쿠리가 널브러져 있었고 주변은 난장판이 된 채, 두렵고 막막했을 이승의 마지막 순간을 누구의 위안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가고 말았다. 넋이 나가 망연자실한 채로 아버지 옆에 주저앉아 울었다. 돌보다 더 단단히 굳은 아버지의 몸이 시큼한 시취를 풍기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눔아, 왜 이제 왔어?

춥다. 어서 가자.


둥그렇게 퍼져 있는 부패한 체액이 아버지의 고통과 두려움의 눈물 같았다.

몸에서 흐른 진득한 외로움의 아픔을 손바닥으로 닦고 또 닦았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내 몸에서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시취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되어 국화꽃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뒤집어 놓았다.


틈새를 막고 번개탄을 피우거나, 목을 매고 약을 먹더라도,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현장엔 반드시 흔적이 남게 된다. 육신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기에 이승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몸뚱이는 잔인한 발버둥을 칠 것이다. 항문이 열리며 분뇨가 흩뿌려지고 체액이 낭자하며,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모습으로 가족을 맞이할 것이다. 내가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이것은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이런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겨진 사람에게 되풀이할 수 있겠는가?


어김없이 10월이 되면 떠오르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처럼, 나를 처음 대면할 누이에게 어떻게 이런 상처를 또다시 남길 수 있겠는가? 메울 수 없고 흩어지지 않는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남아 더 잘해주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내게 남은 모진 이별의 아픔을 하나뿐인 남동생이 그렇게 떠남으로써 남겨진 누이에게 대물림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절대 자살할 수가 없다.


무엇이...

당신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가? 무엇이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가?



<추신>

요새 글이 잘 써지지 않습니다.

겨우 한 글자, 한 글자 피 토하는 심정으로 찍어 보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글이 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는 날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두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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