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서
(글/곽찬희)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모난 데가 보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누군가 내 안의 어둠을 들여다볼까봐, 마음 한켠을 감춘 채 살았다. 우리 형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나는 집과 학교에서 모순적인 하루를 지냈다. 집에서는 형을 보듬어주고 챙겨주었다. 그러나 학교 밖에는 형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혹여나 친구들이 알아서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도리언도 나처럼 내면을 들추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결핍이 있는데, 스스로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배질은 그림이라는 재능으로 도리언의 초상을 그리며 결핍을 채운다. 도리언은 그 수단이란 게 마땅치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완벽한 시빌이라는 여배우의 겉모습에 취하는 것뿐이었다. 시빌의 연기 능력이 처참하다는 것이 친구들 앞에서 밝혀지자 도리언은 분노를 떤다.
"세상이 당신을 숭배할 수도 있었고, 당신은 내 이름을 지닐 수도 있었어. 그런데 지금 당신은 누구야? 그냥 예쁘장한 얼굴을 지닌 삼류 배우에 불과하다고!"
도리언은 시빌에게 폭언을 쏟아붓고 돌아선 다음 다시 초상화를 본다. 방금 행동처럼 얼굴에 온통 모순덩어리로 범벅이고 있다. 되돌리고 싶어도 모난 데는 고쳐지지 않는다. 결국 도리언은 초상화를 그려낸 배질이라는 화가를 칼로 찔러 죽인다. 살인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합리화하지만 초상 속 자신의 얼굴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다.
초상은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초상에 서서히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니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다. 나는 도리언을 통해 결핍을 부정할수록 결국 파멸의 길로 치닫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핍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핸리 경이 말하는대로 무작정 마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모난 데가 보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한때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우리 형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형이 장애라는 사실을 숨긴다고 해서 내가 형 동생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게 형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 이제 나는 형과 함께 우리 둘만의 찬란한 인생길을 걸어나가고 싶다.
형,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형은 직장에서 나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고 다니는데, 나란 동생이란 참...
조금 핑계를 대자면 누가 형을 잘못 알고 욕하는 게 싫어서 형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못했던 거 같아.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내 스스로 못난 사람같기도 하고 형한테 더 미안해져. 이래놓고 형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해. 형은 그 누구보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잖아. 그거 요즘 세상에서 다들 하지 못하는거다? 형 대단한거야. 잘하고 있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남들은 대학다니면서 술먹고 놀때 형은 직장에 들어가 가족을 위해 돈 벌고 있잖아. 형 정말 멋져. 내가 학교에서 꿈이 없다고 방황하는 친구 보면 늘 형 이야기를 해줘.
큰일이 아니어도 하루하루 가치있게 지내다보면 그것 또한 성공이야!
그러니 형 자부심 가져. 그동안 형한테 잘 못했던 거 앞으로 갚아나갈게. 사랑해. 형!
글은 이렇게 쓰다보면 마음 정리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이제 형의 존재를 내 삶의 결핍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여러분도 인생에 결핍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올 때 이렇게 글로 정리하면 어떠할까?
(글/곽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