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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Feb 25. 2023

철길에 대한 단상

삶의 단상 


기차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1964년 12월로 기억된다.


덕유산


내 고향은 오지로 일컬어지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물론 그곳에는 기차가 없었다.


하루 두 세 번 뽀얀 먼지를 내뿜으며 오가던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여닐곱살이었던 나는 먼지를 일으키는 버스를 보면서 까닭 모를 슬픔에 잠기곤 했다.


대부분 시골 아이들처럼 버스가 보이면 환호를 하며 그 뒤를 따라갔고, 먼지를 흡씬 뒤집어쓴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듯 뽐내기를 즐겼다.


가야 한다.

딱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체 무작정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저 버스를 타면 그렇게 훌쩍 떠나갈 수가 있겠구나!


그러면서 아련한 슬픔이 살그머니 스며나왔다.


말 없이 굽어보는 덕유산을 흘낏 바라보며,


나는 그곳을 떠나 그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마치 그곳을 떠나는 것이 숙명처럼...


기다리던 날은 의외로 쉽게 다가왔다.


교육열이 유달랐던 엄마가 오빠의 공부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나이 9살(다른 아이들은 모두 8살에 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한 해 늦게 들어갔다.)에 대 도시인 전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드디어 그렇게도 고대하던 버스에 올라 그곳을 뒤로하는 순간,

도회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 그곳을 영원히 떠난다는 사실에 갑자기 막막해졌다.


차창 가에 부딪치는 희고 탐스러운 눈송이들!


그것은 슬픈 이별의 전주곡이었다.


안녕!


나는 내리는 눈송이에게 속삭였다.

앙상한 포플러 나무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전주로 향하는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안녕!


나,

전주로 이사 간다.


언니와 오빠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보다

정들었던 친지와 이웃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철부지인 나는 포플러와 단지봉. 허옇게 눈을 뒤집어쓴 덕유산 정상에게 안녕을 고하며 마음으로 울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출발했지만 꼬박 6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전주

심한 차멀미에 나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남부터미널에 내려 난생처음 택시를 타고 남노송동까지 달려갔다.


동일 연탄 앞에 하차했을 때 혼미할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렸을 때 

갑자기 고막이 터질 듯 들린 기적소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

칙칙폭폭


거대한 소음을 동반하며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기차!


뱀처럼 꼬불꼬불 한 기차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벌써 48여 년 전 일이다.


석탄을 때는 기차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고

동일 연탄도, 그 기찻길도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집 근처에 지하철 차량기지가 있어


한참을 선채 철길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시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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