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달콤한 과일 속에 담긴 어머니의 기억

9월 24일의 꽃

by 가야

9월 24일의 꽃 – 오렌지

달콤한 과일 속에 담긴 어머니의 기억


나는 오렌지.
언제나 환한 빛깔과 새콤달콤한 향기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왔지요.

오렌지의 기원과 꽃말


나의 뿌리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 귤과 포멜로(자몽의 일종)가 자연스럽게 교배되면서 세상에 태어난 열매, 그것이 바로 저예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지만, 극심한 더위보다는 온화한 아열대 기후에서 가장 잘 자라지요.
그래서 지금은 스페인, 브라질, 미국 플로리다 같은 지역이 세계적인 오렌지 산지가 되었답니다.

나의 꽃말은 “순수”와 “신부의 행복”.
서양에서는 오렌지꽃으로 신부의 화관을 만들며, 영원한 사랑과 결혼의 축복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오렌지


한국에서 나를 처음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유화와 수입 개방이 이루어지면서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지요.
당시 나는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귤은 맛이 없다며 값비싼 나를 찾던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만큼 나는 부와 세계화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귤과 나는 다릅니다.
귤은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아 쉽게 까먹을 수 있지만, 당도는 부드럽습니다.


반면 나는 크고 껍질이 두꺼우며, 톡 쏘는 산미와 진한 향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귤은 ‘겨울의 따뜻한 일상’, 나는 ‘새로운 세계의 맛’으로 기억했지요.

예술 속 오렌지


나의 빛깔과 향기는 예술 속에서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폭력성을 탐구하며, “오렌지”를 낯설게 뒤틀린 인공적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했지요. 영화로 만들어져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에도 오렌지를 따는 농부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네덜란드 정물화에는 잘라놓은 오렌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오렌지는 그 자체로 풍요와 낯선 이국적 매혹을 상징하는 과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오렌지는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부의 손에 들린 오렌지꽃은 순결과 축복의 은유였지요.

어머니와 오렌지


그 기억 속에는 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남편을 젊은 나이에 떠나보내고, 여섯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던 분.


여름이면 옥수수 장사, 가을이면 감, 겨울이면 떡을 이고 나가며
아이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장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병을 얻고 나서는, 조금 달라지셨습니다.
음식에 욕심이라고는 없던 분이, 어느 날부터 오렌지를 찾기 시작하신 겁니다.


한 개에 2천 원 남짓, 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값비싼 과일이었지만
자식들은 기꺼이 어머니의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평생을 자식만 먼저 챙기던 어머니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제주도 출장에서 사 온 한라봉이 문제였습니다.
한라봉을 맛본 어머니는 이제 “오렌지는 맛이 없다”며, 한라봉만 찾으셨습니다.


당시 한라봉 한 개 값은 만 원, 자식들에게는 감당하기 벅찼던 시절이었지요.


늘 좋은 것은 자식에게 먼저 주던 어머니였는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먼저 맛보셨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모습이 지금은 눈물겹도록 그립습니다.

오렌지 향기에 담긴 그리움


이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내 책상 위에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의 사진이 있습니다.


나는 오렌지를 볼 때마다, 그 웃음을 떠올립니다.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분이,
말년에 처음으로 드러낸 작은 욕심.

그 욕심이 오렌지 향기 속에서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오렌지는 단순한 과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시대의 상징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그리운 사람의 추억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 이제 오렌지를 먹을 때마다 당신이 생각납니다.
그리움이 달콤 쌉싸래한 향으로 번져옵니다.


https://youtu.be/mddetCoWfgk?si=-lThQyOW-wtC_U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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