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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향기 – 기후 위기와 소나무의 위험한 동거

12월 14일 탄생화

by 가야

◆ 소나무 향기 속의 위기 – 민족의 나무를 다시 바라보다


우리나라 산천을 걸어보면, 계절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겨울에도 푸른 기개를 지켜온 존재를 자연스레 마주하게 됩니다. 소나무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한 상징이었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잎을 떨구지 않는 성질 때문에, 소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본보기로 여겨져 왔습니다. 세월이 달라져도 변함없는 그 푸름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중심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소나무와 함께 시작하고 소나무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집 앞에 솔가지를 엮어 금줄을 치며 부정을 막았고, 선비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학문을 닦으며 충절을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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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을 떠날 때도 소나무로 만든 관이 몸을 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두 함께해 온 소나무는, 어쩌면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가장 오래 바라본 ‘조용한 목격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한삼우(歲寒三友)’


◆ 동아시아와 서구가 공통으로 사랑한 나무


소나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우리만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매화와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리며 선비의 고결한 기상을 상징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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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신이 하강하는 길이라 믿어 새해 문 앞에 소나무 장식을 걸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사계절 내내 푸르다는 특성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로 숭배되었습니다. 지역과 문화가 달라도, 소나무에서 느끼는 기품과 정신성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 보이지 않던 침입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다


그러나 오늘날, 영원히 푸를 것만 같던 소나무 숲에 짙은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바로 소나무재선충병입니다. 길이 1mm 남짓한 작은 선충이 매개충을 통해 소나무 속으로 침입하면, 나무는 며칠 내로 수분 이동이 차단되어 고사하게 됩니다. 감염률은 사실상 100%. 작은 생명체가 만든 결과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치명적인 피해가 뒤따릅니다.


이 병은 이미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포르투갈, 스페인 등지까지 번졌고,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매개충 활동 기간이 길어지며 피해가 더욱 가속되는 추세입니다. 자연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가 만든 시대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 산림 재난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 소나무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


지금 우리는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감염된 나무를 베어내고, 예방 약제를 주입하고, 생활권에서 소나무 이동을 제한하는 등 여러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확산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나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소나무는 단지 숲의 한 종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의 정신을 비추었던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방제를 성공시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온전히 후대에 넘기는 일입니다. 궂은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소나무처럼, 우리는 소나무를 향한 책임과 사랑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한 그루의 푸름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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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푸르게 뒤덮일 그날을 위해


솔향기 가득한 산책길, 바위 위로 드리워진 소나무의 부드러운 그늘, 겨울 끝자락을 알리던 청량한 솔바람. 이런 풍경을 잃고서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도 텅 비게 될 것입니다. 소나무는 자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무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작은 노력은 먼 훗날 다시 푸른 숲을 이루는 씨앗이 됩니다.


푸른 소나무가 우리 산천을 다시 건강하게 뒤덮을 그날을 소망하며,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정신의 의미를 오늘 다시 되새겨 봅니다.


요약 정보

소나무(Pine)
학명 Pinus spp.
상징 지조, 장수, 불멸, 고결함
문화적 의미 한국·중국·일본·유럽 등 동서양 공통의 상징적 나무
위협 소나무재선충병(매개충을 통한 100% 고사형 병해), 기후 변화로 확산 가속
보전의 의미 자연·문화·정신의 유산을 지키는 책임


https://youtu.be/7IXi7O0IWH8?si=YcBkh6OFLZ4Fw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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