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의 탄생화
12월 15일의 탄생화, 서향(瑞香)은 그 이름처럼 '상서로운 향기'를 품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앞서 기본 정보는 많이 접하셨을 테니, 오늘은 서향의 가장 큰 매력인 '향기'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그 향이 우리 생활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늦겨울의 문턱이 닿아오면 저는 늘 이 꽃을 떠올리게 됩니다. 달력에 12월 15일이라는 숫자가 들어오는 순간 마음속에 은은히 피어오르는 꽃, 서향입니다. 이름 그대로 상서로운 향기를 품었다 하여 ‘서향(瑞香)’이라 불리고, 천 리 밖에서도 향기가 느껴진다고 해서 ‘천리향(千里香)’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꽃은, 작은 꽃송이에 비해 놀랄 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흔한 탄생화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서향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압니다. 이 꽃이야말로 겨울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의 연금술이라는 사실을.
서향의 발향은 자연이 만들어낸 정교한 기적입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직 봄이 멀게 느껴지는 2월에서 4월 사이. 그 누구보다 먼저 계절을 깨우는 이 꽃은 리날룰, 리모넨, 벤질 아세테이트 같은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이 향 성분들은 곤충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어려운 시기에 서향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깁니다. 마치 ‘이곳에 생명이 있다’는 신호를 공중에 품어 보내듯, 향을 통해 수분매개자를 끌어들이는 생존 전략이지요.
하지만 인간의 감각으로 이 향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리날룰의 강력한 진정 효과는 우리의 신경계를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향 전체가 주는 따뜻한 울림은 마음을 조용히 들어 올립니다. 추위가 가라앉지 않은 계절에 서향 향기를 맡으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봄이 먼저 마음에 찾아오는 듯한 평온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서향은 오래전부터 문인과 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온 꽃입니다. 중국 명대의 화가 진사(陳栝)의 ‘서향도(瑞香圖)’는 서향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세밀한 필치로 담아냈고, 청대 궁중 화원들은 서향을 길상(吉祥)과 왕실의 품격을 상징하는 꽃으로 그려넣곤 했습니다.
특히 궁중 장식화인 어화도(御花圖)에서도 서향은 ‘지조와 고결함’의 표상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난초의 절개, 매화의 고고함과 더불어 서향의 은은한 향은 문인정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서향은 ‘지카(沈香)’라 하여 향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고전 회화에 자주 등장했으며, 서정적인 정원풍경을 묘사하는 우키요에 속에서도 겨울과 초봄의 전환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했습니다. 서양 화단에서는 비교적 생경한 꽃이지만, 동양의 예술사에서 서향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서향의 꽃말은 ‘영광’, ‘불멸’, ‘꿈속의 사랑’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고요함으로 존재하는 꽃이 왜 이런 장대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 답을 서향의 생태에서 찾습니다.
제가 양천구의 작은 화단에서 지켜본 서향들은 영하의 추위도 묵묵히 견디며 눈 속에서도 잎을 잃지 않았습니다. 몸집은 여리지만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인합니다. 이 버텨냄의 힘이야말로 서향이 말하는 ‘영광’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광은 사람들이 말하는 화려한 성취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인내와 결의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향수를 통해 서향 향기를 손쉽게 만날 수 있지만, 가공된 향은 본래의 깊이를 온전히 담기 어렵습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실제 자연의 서향 앞에 서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늦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 서향이 품은 향은 단순한 달콤함을 넘어 ‘살아 있음’의 울림을 전합니다.
그 향을 들이마시는 순간, 우리는 마치 저마다의 인생에서 잊고 있던 목적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서향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요한 계절이라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저마다의 향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향은 눈에 띄는 꽃은 아니지만, 향으로 세상을 밝히는 꽃입니다. 그 향기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과장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고귀한 신호입니다. 겨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서향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천리를 품은 향기를 발산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말미 요약정보
• 서향(瑞香, Daphne odora)은 겨울과 초봄에 피는 향기 강한 상록관목입니다.
• 리날룰·리모넨·벤질 아세테이트 등 VOCs 조합으로 특유의 깊은 향을 냅니다.
• 꽃말은 영광, 불멸, 꿈속의 사랑.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함을 상징합니다.
• 명·청대 회화에서 길상과 고결함의 상징으로 사랑받아온 꽃입니다.
• 실물의 향은 아로마테라피 효과가 높아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https://youtu.be/q9H1KDt6YiI?si=ryo1WA2dveNv2Z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