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아이리스는 처음부터 특별한 이름을 가진 꽃이었습니다. 학명 Iris는 ‘무지개’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꽃은 한 가지 색으로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보라와 파랑, 노랑과 흰색의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 꽃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이리스는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전령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의 다리 위를 오가며 소식을 전하던 존재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희망의 도착이라 불렀고, 동시에 이별의 예고라 여겼습니다. 시작과 끝이 함께 깃든 꽃. 아이리스는 늘 경계에 서 있습니다. 낮과 밤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보내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의 경계에 이 꽃은 조용히 빛을 남깁니다.
아이리스의 꽃말은 ‘진실’과 ‘지혜’입니다. 이 말은 이 꽃의 생김새와도 참 닮아 있습니다. 칼날처럼 곧게 뻗은 잎, 좌우 대칭으로 단정히 정렬된 꽃의 구조,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색의 중심. 아이리스는 흐릿한 감정보다는 또렷한 감정에 더 가까운 꽃입니다. 이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기 안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의 태도 같은 것입니다.
오래된 유럽의 묘지에는 아이리스가 자주 심어졌다고 합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무지개를 타고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준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탄생의 꽃이면서 동시에 사후의 꽃이 되었습니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잇는 경계의 식물.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정원이 되고, 떠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길잡이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 이중적인 위치가 이 꽃을 더욱 깊어 보이게 합니다.
아이리스는 미술 속에서도 특별한 상징으로 오래 머물러 왔습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1889년 작품 ‘아이리스’는 이 꽃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신경쇠약의 병실 창가에서 그는 이 꽃을 그렸습니다. 화면 속 아이리스는 찬란하지만 어딘가 고립되어 있습니다. 서로 가까이 서 있으나 기대지 않는 꽃들. 그 모습은 꽃이라기보다 사람에 가깝습니다. 고흐는 이 아이리스를 통해 어쩌면 자신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리스는 향수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종은 오리스 루트라는 이름으로 향수의 깊은 베이스 향을 만들고, 어떤 종은 함부로 다루면 위험한 독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 꽃이 지닌 또 하나의 본질은 바로 이 양면성입니다. 향기와 독, 화려함과 절제, 희망과 이별이 동시에 공존하는 존재. 그래서 아이리스는 단순한 관상용 꽃 이상의 깊이를 갖습니다.
아이리스는 봄과 초여름의 경계에서 피어납니다. 벚꽃이 지고 난 뒤, 아직 장마가 오지 않은 시기입니다. 계절조차 이 꽃을 닮아 있습니다. 완전한 시작도 아니고, 완전한 끝도 아닌 시간. 인생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자주 놓치는 그 ‘중간’의 시간 속에서 아이리스는 조용히 무지개를 펼쳐 보입니다. 이 꽃은 결과의 꽃이 아니라 과정의 꽃처럼 보입니다.
아이리스는 크게 말하지 않습니다. 향기도 은은하고, 피어 있는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 스쳐 지나가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분명히 보았는데, 확실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색의 기억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기억의 꽃이 됩니다. 지나간 계절, 지나간 사람, 그리고 지나간 나 자신을 조용히 떠올리게 하는 꽃입니다.
요약 정보
· 아이리스는 ‘무지개’에서 이름이 유래한 꽃입니다.
· 진실, 지혜, 희망, 이별과 인도의 상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 영혼의 길잡이이자 경계에 서 있는 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 아이리스는 결국,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아직 건너지 못한 내일을 함께 비추는 꽃입니다.
https://youtu.be/DZG24-DXWYs?si=R5JyN04v1B1y663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