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강선우 일병 구하기'

스냅

by 테토아부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와 대원들은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적진으로 향한다.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태반인데, 굳이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려 애쓰는 이유는 뭘까. 수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이라 해도 좋고, 인류애라고 해도 좋고, 희생정신의 존엄성이라 불러도 좋다.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프다. 인간 생명의 소중함은 집단화되지 않는다. 집단화가 극단으로 이뤄지는 전쟁이란 공간에서 개별 존엄성을 추구하는 것, 이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물론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전쟁의 사실적 묘사에 있다. 그런 점에서 스필버그는 윤리를 고민하는 작가이기보단 뭐가 재밌을지 아는 흥행사라고 생각한다.)


존 밀러 대위를 이재명 대통령, 라이언 일병을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치환하면 얼추 대응이 된다. 강 후보자는 재선 의원이니까 계급도 일병과 어울린다. 여권이 강선우 일병을 구해야겠다는 마음도, 대원들이 라이언 일병을 구할 때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꽤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강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정치 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염려했다. '우리'가 여기서 버리면 '얜' 끝이란 논리다.


common.png 여론조사 보는 모습 ㅜ


영화와 현실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라이언 일병과 달리 강선우 일병은 낙마해도 생명에 지장은 없다. 한 나라 정부 부처의 장관은 동정심이나 인간애로 정해질 일이 아니다. 기세 싸움을 펼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최대한 해당 직책에 적합한 사람을 최대한 냉정하고 공정하게 선정해야 하는 일이다. 강선우 일병 구하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모두가 수긍할 만한 인류애가 바탕이 된 게 아니다. 그냥 '가재는 게편'이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식 맹목적인 감싸기다.


라이언 일병이 존 밀러 대위의 이부자리를 펴줬고, 밀러 대위가 그게 생각이 나서 라이언을 구하러 가자고 했어봐라. 밀러 대위는 미친놈 취급을 받고, 영화는 그지같다고 욕먹었을 것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 강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 중에 이부자리를 펴줬다는 사실이 있었을 것이란 것도 억측이다. 아무튼 중요한 대목은 영화가 라이언과 밀러의 관계성을 부각할수록, 숭고함과는 멀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아마도 강선우 일병 구하기는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여론 수치에 민감한 민주당 정권이 여론 악화를 고민하지 않았을리 없다. 다만 무리해서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49%의 고정층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임명을 강행한 이 대통령도, 물밑에서 강 후보자를 지키자던 민주당 의원들도, 그래서 한 부처의 수장이 된 강 후보자도, 그리고 지금은 열심히 지적하는 언론도 언젠가는 이 상황을 훌훌 털고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 일주일 뒤면 뉴스에서 강선우 일병 구하기 이슈가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결국 이 사태의 당사자이지만,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민주당) 보좌진들만 아픔을 간직한 채 남겨질 것이다.



common (23).jpg 다음 선거 때 열심히 일하는 모습 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