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공간
다시 또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그간 잠을 못 자서 그런 건지, 아침에 먹은 무언가가 걸렸던 건지 잘 몰랐었다. 분명 제정신으로 연구실에 와서 일을 했었지만, 이상하게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숨 쉬기 버거운 것부터 술을 마신 듯 몸을 가누는 것이 어려웠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은 바닥에 박혀있고 입술은 파르르 손 발이 저려온다. 머리를 어디다 박았는지 앞이마가 점점 아파왔다. 쓰러질 때의 기억이 없다. 시간이 좀 지나 상황 파악을 해보니 뾰족한 모서리 같은 곳에는 부딪히고 쓰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5분도 안되어 프로그래밍이라도 한 듯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죽다 살아나니 손에 잡히는 건 가족들의 연락처였다.
다행히 이 날은 오후 미팅이 없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눈물과 콧물이 멈추질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몸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도통 원인을 몰랐었다. 당장에 병원에 가는 것보다 집으로 향하는 본능이 더 컸었는데, 지하철 철봉을 붙잡고 1시간을 가는 순간이 이곳에서 보낸 4년의 시간 중 가장 길었던 시간이었다. 이때는 부정맥 같은 건 줄 알았지만 차가워진 얼굴색과 식은땀을 보고 내가 급체했음을 알았다. 차라리 의학박사에 도전해 볼 걸이라며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 방에는 뜯지 않은 약들이 많다. 해열진통제, 감기약, 피부연고 등 이 수많은 가정상비약들을 지퍼백에 꽁꽁 싸서 넣어놨다. 2020년, 2022년, 그리고 2024년에 가족들이 챙겨준 것들이다. 살면서 아픈 적도 없기 때문에 따로 찾지도 않아 먼지 투성이다. 그런 지퍼백 속에 차곡 쌓인 소화정장제 무더기를 발견했다.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넘었어도 사람 살리는 효과는 확실했다. 그렇게 쓰러지듯 자고 일어나니 죽다 살아난 기분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나는 가족들 덕에 다시 또 살아났다.
내가 내 명을 재촉했다. 이번에도 운 좋게 또다시 살아났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운이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다행인 건 아무도 못 봤다는 것에서 안도감이 왔다. 나는 이런 알량한 내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더더욱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물론 가족들 때문이라도 당장에 죽을 수는 없다.
단순히 급체했다고 해서 몸을 통제하지도 못했던 이유가 그간 잠을 자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 무의식적으로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다음 행선지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은 오롯이 내가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인데, 학연, 지연, 혈연 이런 연고주의에 도움 주지 못해 자책하는 가족들을 보기 싫다. 언제이고 이들은 내가 이 먼 곳에 와서 죽어가든 살아가든 나를 살리는 빛을 보내주고 있지만, 내가 어딘가에 파묻혀 보이는가 본인들의 영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를 비춰주는 이들의 등대 빛은 내가 언제 어디서든 항상 받아오고 있다. 그렇게 벌써 17년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