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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Sep 09. 2024

결함

복잡한 기계 장치 같은 인간관계

아버지가 전화를 피하신다. 사람에 대한 내 태도에 크게 실망하신 것 같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맺는 게 참 쉽지 않다20대에 사람과 벽을 쌓던 습관을 내버려 두었더니 30대에 들어서 조금의 인연도 단칼에 자르는 버릇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었다. 단순히 내가 상처 줄까 봐 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왔던 구실은 누구도 가까이 올 없는 선으로 남겨졌다.


멀리서 무리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속해 있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는 앞가림이 먼저였다. 내가 그들과 함께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망쳐나갔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소속감이 생겼던 스무 살의 나는 유혹에 약한 사람이었다. 대학에 들어온, 공부를 하기 위한, 그렇게 다짐했던 또 다른 부모님의 미래가 되겠다는 꿈은 저 멀리 던져놓고, 내가 내뱉은 약속과 점점 멀어져 가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멀어지는 이유가 내 자존심이나 부족한 사회성 때문일 거라며 시간과 함께 흘려보냈다. 


시간이 좀 지나 이후 여유가 조금 생기더니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토록 멀리했던 사람을 다가갔던 것에는 그립거나 외로움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아닌 나를 위한 행동들이었다. 

나는 마냥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다. 괜찮은 사람은 더더욱. 언제나 내 행동의 이유는 반드시 가족과 관련이 있었다. 그들이, 혹은 내가 가족과 관련된 명목이 없었다면 일부러 오지랖 부리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게 도움 받는 당사자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내 멋대로 판단하고 다가갔다. 결국 나 좋자고 마음 편하자고 행동했다.


나는 짧고 반짝이는 인연들에 익숙하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과 벽을 쌓고 조금의 사소함이라도 걸린다면 잘라내오고 있다. 그러니 이런 나를 보고 가족들이 안타까워한다. 남에게 도움 받을 줄 모르는 것 보다도 옆에서 함께 하는 이가 없다는 것에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사람이 싫다는 이런 내 말에 상처받으신 같다. 당신의 아들이 결함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건지, 혹은 당신이 바라는 아들의 모습과 멀어지기 때문인 건지. 나는 그저 당신을 실망시켜드렸다는 것에 서글펐다.


요즘 아버지는 남의 집 손주들을 보며 부러워하신다고 한다. 지금 이 중년 남자의 소원은 당신의 자식이 그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행복과 멀리 하려는 것은 아닌데 최근까지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몰랐었다.  그렇게까지 사람을 멀리하고픈 건지 이유를 찾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고작 몇 줄 안 되는 글을 쓰면서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허덕였지만, 결국 나는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도 빠르게.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위해 발이 젖어가며 절을 하는 당신을 떠올린다. 당신은 언제나 아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연신 손 발이 닳도록 빌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그곳을 떠나 멀리 나온 이유도, 꿈을 이루어 뿌듯해할 당신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언제이고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탱하고 있지만 내가 만약 가정을 꾸려 살게 되면 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나와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결함 있는 인간, 사람과 친하지 못한 이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예민하여 항상 날을 갈고 있는 이에게 함께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이고 이런 생각을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다가오는 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건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본성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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