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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하제 Jul 26. 2023

15만 원에 피아노를 팔았다.

부재하는 추억에의 작별인사.

내 기억엔 피아노를 좋아했던 적은 없다. 

다만 둘째 인지라 언니가 하는 것은 뭐든 다 좋아 보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고 그렇게 나는 5살에 피아노 학원에 처음 가게 됐다. 거기서 만난 피아노 선생님은 나에게....


마치 세계적인 피아니스타의 탄생 비화 같은 이 서사는 굉장한 비극으로 끝이 난다. 그 이후로 계속 피아노 학원은 다녔던 것 같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반지하에 살면서도 엄마는 나를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심히 하면 좋았을 텐데 책상 뒤로 구몬학습지를 몰래 버리던 것과 같이, 연습을 두 번 하고 사과는 몰래 다섯 개 색칠했다. 그러다 오 학년 때쯤 체르니 30번을 치다가 13번인가 즈음 쳤을 때 피아노 선생님이 한 달 동안 한곡만 치게 하고 진도를 안 빼줬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에 질렸고, 그만뒀다. 


승부욕도 있고, 음악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피아노와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 동안 한곡만 치게 해서 정 떨어지게 했던 선생님은 너무하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더 시간낭비 돈낭비 하지 않고 잘 된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움이 한편 남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작년쯤 엄마가 얘기했다. '피아노 팔 거니까 알아봐. 아까워도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 이사 갈 때마다 웃돈 줘야 하고, 자리만 차지해서 피아노를 팔아야겠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엄마가 시키니 피아노 팔 데를 알아봤다 두어 군데 전화해 보니 '엄마 30만 원 정도에 팔 수 있데.' '뭐? 30만 원? 아깝다. 우리 피아노는 진짜 세건대... 어디 흠집 난 곳도 하나 없는데.' 피아노를 쳤어야 흠집도 났겠지. 우리 집 피아노는 진짜 새 거같이 흠집하나 난 곳도 없었다.  


아니 이 피아노를 얼마 주고 샀는데 단돈 삼십만 원에....


우리 가족 모두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지, 그때 피아노 중고 판매는 불발 됐다. 


그때 생각했다. 이제 진짜 피아노 열심히 쳐봐야지. 주말마다 한 번씩은 쳐봐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엄마가 다시 얘기했다. '진짜 피아노 팔 거야. 안방에 침대 놓고 싶은데 자리가 없어, 피아노 중고로 파는 거 알아봐. 돈 안 준다 그러면 그냥 갖다 버릴 거야' 

아. 이제 진짜구나, 이제 우리한테는 4남매가 칠 수 있는 피아노보다, 엄마 아빠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침대가 더 필요했다. 그게 맞았다. 


'저 피아노 중고 판매 하는 곳이죠? 영창 피아노..(사진을 보내주고) 있는데 이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어휴 이건 오래돼서 돈도 못 받아요, 돈 내고 수거하면 모를까.'


일이 년 사이에 중고피아노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안 좋아졌다. 코로나 끝나고 중국 경기가 안 좋아지며 수출이 안 되는 탓이라고 했다. 나는 몇 군데 전화를 더 돌렸고, 겨우겨우 15만 원 준다는 데를 찾았다. 


'피아노 15만 원 주는데 찾았어, 내일 아침 8시에 수거하러 간데.'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그러니 동생이고 언니고 아쉬워 죽는다. '우리 피아노 진짜 새건대, 아깝다.' ' 피아노야 미안해, 잘 가, 연습 두 번 하고 사과 세 개만 칠했어 거짓말해서 미안해.' ' 어? 누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ㅋㅋㅋ' 

다들 저마다 피아노와의 추억을 단톡에 쏟아놓는다. 


맞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친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의 다룰 줄 아는 악기었기에 시험 기간마다 피아노를 쳤었다. 시험기간에는 시사뉴스, 방정리, 백과사전마저 재밌는 그런 시기 아니던가. 피아노 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였다. 평소엔 지루하기만 하던 바흐도 흥미로웠고, 세계 명곡도 재밌게 쳤다. 


아. 아쉽다. 15만 원에 피아노뿐만 아니라 우리 4남매의 지난 피아노와의 추억이 팔려나가는 기분이다. 


내일 아침이면 이제 우리 집에 피아노는 없다. 기분이 이상하다. 공기와 같이, 안방 문 뒷자리에 항상 있었는데. 내일 피아노 나가는 아침 8시 비도 오지 말고 잘 나가서 좋은 주인 만나서 잘 갈고 닦여지길 바란다. 


잘 가 피아노.



덧, 피아노를 15만 원 주고 사가겠다던 업자는 피아노 상태를 보더니 너무 오래되었다며 되려 수거비 5만 원을 받고 우리 피아노를 가져갔다. 우리의 추억을 사기 쳐서 돈을 받아서 수거해 간 업자에게 화가 나기보다 그만한 가치가 안된 피아노가 우리 가족한테 어떤 가치였던가를 생각해 보면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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