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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하제 Jul 24. 2023

무엇이 서이초 선생을 침묵속에 죽게 했는가

촌지와 성희롱과 스승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가슴이 먹먹한 뉴스를 보았다. 습관처럼 확인하던 주식 정보방에서 난데없는 시사이슈가 올라왔다. 이상한 것은 뉴스 링크보다 먼저 뜬 것은 블라이드와 커뮤니티 글들을 캡쳐한 것들이었다. '왜 기사한줄 안나는거죠? 언론사 장악 한 건가요?' '이거 누가 언론사에 제보좀 해주세요' 그 밑으로는 줄줄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들의 갑질 케이스들이 올라왔다. 


나는 90년도에 서초구 방배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나의 담임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이 촌지를 갖다 주지 않는 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나를 벌세웠다. 촌지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벌을 서며 반항심만 깊어갔다. 똑같이 잘못해도 나만 벌섰다. 잘못을 안해도 벌섰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어이없던 순간은 뒤에 앉은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리러 잠시 뒤돌았다 앞을 봤는데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수업시간 20여분 간을 앞에 나가 엎드려 뻗쳐 하고 있었다. 이런일들이 매.일 있었다. 매일. 내 나이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반포에서 여중여고를 나오며 변태 선생님들의 성희롱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성희롱, 성추행이라고 판단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 있었던 것이 명확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나이많은 변태 아저씨 선생님들이 있긴 했었다. 가슴팍에 달아놓은 명찰을 친절히 고쳐 달아 준다던가. 칭찬하거나 타이르는 척 하면서 등이나 팔 어깨를 쓰다듬는다거나.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릴 때마다 치마 아랫단이 펄럭여 안쪽 속치마가 훌렁 보이기도 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을 최대한 피하고, 명찰을 똑바로 달고, 친구들과 쑥덕거리며 삭히는 것 뿐이었다. 


내가 다녔던 서초, 반포의 학창시절은 이랬다. 어쩌면 우리집이 대단한 권력가가 아니여서 나만 이랬을 수도 있지만, 오늘의 일은 당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부모가 어느 정도로 갑질을 해댔길레, 그 힘든 임용시험을 치르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00년생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도대체 어떤 갑질로 힘들게 들들 볶아댔을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자살은 순간적인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하나 자기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 하나 없다. 주변 동기 선생님이나, 사수 선생님, 교수님, 가족 그 어느 하나 누구 도움을 청할 데가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까. 사람은 적당히 힘들면 소리를 지른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런데 너무 힘들고 막막하면 속으로 그 아우성을 삼켜 썩고 곪아간다. 조금만 손을 내밀고 고개를 돌려도 벗어날 방법이 있고, 도움을 청할 데가 있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못한채 혼자 속으로만 삭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선생은 어떤 일을 겪은 것일까.


촌지와 성희롱으로 물들었던 강남의 학교가 이제는 학부모의 갑질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더럽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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