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어떻게 내느냐, 얼마나 조화롭게 사용하느냐, 어떤 타이밍에 입속에서 향이 느껴지느냐를 생각하다 보면 요리는 마치 과학의 한 영역이라 느껴질 정도다.
맛을 잘 느끼고 싶다면 또는 맛과 음식에 대한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 싶다면 가장 과감하고도 빠른 방법인 '세계 음식으로의 도전'을 추천하는 바이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음식은 말 그대로 '도전'하는 음식이었지만 요즘은 다른 나라 음식들이 우리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접하기 쉽고 무난한 난이도의 세계 음식으로 '베트남 음식' 이 있다.
일식이 더 접하기 쉽지 않냐고 하지만 일식은 우리나라 음식과 향을 내는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 향을 다루는 오늘 챕터보다는 식감과 요리법에서 구분하여 따로 다루는 편이 좋을 듯하다.
베트남 음식, 주인공은 고수들만 먹는다는 '고수'
베트남 음식! 하면 '쌀국수' 라 답하는 그대는 아직 하수다.
베트남 음식! 했을 때, 향신료인 '고수'나 요리인 '반쎄오' 정도는 나와줘야 '좀 먹어본 사람이구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베트남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고수'라는 향신료인데 필자도 처음 고수를 접했던 2008년, 그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8년 미국 텍사스의 한 도시의 작은 베트남 식당인 아이러브포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친구를 따라 베트남쌀국수집에 덜컹 들어갔더랬다. 처음 가본 해외, 처음 가본 낯선 땅. 나는 그곳에서 경악스러운 음식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양식을 아주 좋아했던 터라 나는 그 무엇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었는데 그날 나는 나도 못 먹는 음식이 있음을 알았다.
다들 주문하는 양지 쌀국수와 스프링롤을 따라 주문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고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듬뿍 넣어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쌀국수 국물을 맛봤는데....
바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시 뱉을 뻔했다.
'이게 음식이라고? 그릇을 덜 씻은 거 아니야? 왜 세제 맛이 나는 거야? '
그날 쌀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나는 그 맛이 고수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밤늦도록 그 충격적인 맛에 대해 한국의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또 생각나다. 밀당의 '고수'
희한한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 세제 맛 국물이 생각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니 개운한 느낌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타지에서 입맛이 미쳐버렸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번 더 먹어보고 싶어 다른 친구에게 같은 식당을 가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 만에 접한 쌀국수 국물.
나는 이 날, 쌀국수 국물을 남김없이 모두 마셨다.
어제는 세제 맛, 오늘은 감칠맛. 그러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그렇게 먹는 유명한 이유가 있는 거였어!'
나는 편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기준점이야 있지만, 적어도 이 날 향 때문에 맛없다고 함부로 평하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문화가 궁금해졌고 미국 유럽 호주 중국 베트남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음식을 맛볼 때마다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베트남 음식을 베트남 접시에!
얼마 전 내 스승님과 내 제자, 그리고 필자, 3대가 함께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이 음식점에서 베트남의 대표 도자기인 '밧짱'도자기에 음식을 내어 주었다. 눈으로 벌써 맛에 대한 신뢰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밧짱 도자기는 국당초(국화와 당초무늬의 결합), 연꽃 문양 등 다른 나라의 도자기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어서 형태보다는 베트남 특유의 문양과 그림으로 유명한 도자기이다. 동남아의 국립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 각지에 널리 전파되어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을 자랑하는데 이곳은 역시나 음식도 맛있었다.
주문해본 메뉴는 '반쎄오' '분짜' '양지 쌀국수' '냉쌀국수'였다.
주문한 반쎄오를 한입 먹고 보니, 무언가 빠진 맛이 나는 게 아닌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고수'였다. 나의 베트남 음식의 뮤즈인 고수.
잠시 반쎄오에 대해 설명을 해 보자면 베트남식 부침개라 불리는 반쎄오는 바삭한 겉 반죽 속에 숙주와 고기, 야채 등을 넣고 볶은 '소'가 들어있고 반 접어서 식탁에 제공되는 메뉴다. 물에 적시지 않은 라이스페이퍼를 한 장 놓고 상추를 한 장 또 얹는다. 부침개를 그 위에 얹어 제공되는 느억맘 소스를 뿌려 돌돌돌 말아 입속에 넣으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이 요리 자체를 식감과 향, 맛까지 모두 놓친 것 없이 살린 엄청난 요리라고 평하고 싶다.
거기에 생 고수를 좀 더 추가해서 먹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요리가 될 것이다.
고수를 넣지 않으면 일반 육수에 가까운 쌀국수 국물도 고수를 넣는 순간, 명백한 베트남 음식이 된다.
향이 얼마나 중요한가. 음식의 정체성을 살리는 동시에 맛도 기억도 끌어올려준다.
맛을 잘 느끼고 잘 표현해보길 바란다면, 입문으로 베트남 음식 중 '고수'라는 재료가 마음에 들 때까지 맛을 보고 또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