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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

시선이 가다가 멈춘 곳, 생각이 일어나지 않은 그곳에 무심이 생겨난다.

by 백년서원

마음이 없는 사람이 마음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애초에 없는 마음인데 갑자기 생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심이란 말은 종교적으로 보면 아주 고매한 경지의 차원에 있는, 그 또한 일종의 마음이다. 없는 듯 있으며, 있는 듯 없는 마음으로, 득도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는 고차원의 경지가 무심( 無心)이다.


무심의 원뜻은 없을 무(無) 마음심(心)이다.

국어사전에는 감정이나 생각하는 마음이 없음. 불교사전에는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너도 참 무심하다."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 말 또한 무심하게 쓰는 말이다. 달라질 것 없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해보는 말이지만 그 또한 미리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 무심에서 나오는 말이다. 저 높은 곳의 하늘은 언제나 말이 없다. 무심한 사람 또한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이 없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는 얄짤없고 인정머리 없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설마 그러기야 할까? 근히 기대하고 바란 결과가 참담할 때 탄식처럼 흘러나오는 대표적인 말이다. 인정에 기대지 않으면 섭섭함이 덜 할 텐데 미련한 마음은 늘 그것을 바라다. 우리는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무언가를 이루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잔잔한 기대치에 연하며 아까운 시간을 잃어가는 게 아닐까?


, 바람, 하늘,,, 노을... 이런 무용한 것들에 바로 그 무심이 깃들어있다. 무심은 사물의 본질 된 성품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찬연히 존재하며 그 형상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것 들이다. 이면이 있을 수 없다. 천년을 흘러도 그 본질을 흐리지 않으니 우리는 늘 바람의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이토록 무 심한 곳에 왜 그토록 서원(맹세하여 소원을 세움: 원하는 바를 크게 세우다) 하는가! 우리는 그 믿음을 넘어 마음까지 줘버린다. 하늘은 말없이 멀고 별은 닿지 않는 곳에서 빛날 뿐이지 않은가.


우리를 바라다보게 하는 것들은 서원한 그 모든 바람을 헌신짝처럼 내 몰라라 하는 특성을 가졌다. 사람도 그렇다. 감정이 없는 무심한 사람은 힘이 세다. 언제나 이긴다. 무심의 대상과 엮여 내 감정을 쓰면 무조건 진다. 주변을 보면 잔정 없고 대면대면한 사람은 어떤 것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잘살고 있다. 애 끓이는 감정의 소유자만 판판히 지는 게임을 한다. 무심한 마음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감정을 적게 쓰고 대면대면함을 적절히 섞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쉽진 않지만 마음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이다.




현대인에게 '멍 때림'이란 단어는 이미 낮설지가 않다. 시선을 한 곳에 머물게 한 시간이 길어질 때의 찰나를 말한다. 불멍, 물멍, 하늘멍이라 불리며 '쉼'의 연장선상에서 치유의 장르가 되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무심의 경지다. 시선이 가다가 멎는 곳, 생각이 흐르다 멈추는 곳이 삶이 쉬어가는 자리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멍'해본 적이 있다면 생리적 필요에 의해 켜진 일상의 노란 신호등이다. 이때는 쉬어가 보는 것이 어떨지.


무심의 근원지는 단연 눈이다. 어딜 보고, 무얼 보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보인다. 자기 효능감을 살려 알아차리고 무심을 쓰면 원래의 내 모습으로 회귀할 수 있다. 우리의 뇌 기억저장소에는 눈으로 보았으므로 만든 이미지가 너무 많이 산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기는 하겠지만 보고 듣는 것에 무심하면 여유로워진다. 멍 때리는 사람과 깨달은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무심이든 멍이 든 결국 나를 이롭게 하는 행위들이다.


물끄러미 찻 물을 내려다보는 중 무심하게 들어온 무심 (無心)이란 단어 한 꼭지가 잡고 생각의 꼬리를 따라갔다. 따뜻한 차와 무심하는 마음이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며 세포 하나하나에 평온이 깃들게 한다. 이완과 함께 말초신경이 회복되는 중이다. 무심( 無心)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집중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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