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에세이
"뎅그렁~뎅그렁~"
지그시 눈을 감고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을 상상하노라면 산사로부터 그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도시에는 없는 '풍경' 소리는 복잡한 세상에서의 위로와 휴식이다. 단 한 번으로 일어난 소리 진동은 어디까지 전해질까? 생각만으로는 그 거리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소리는 진원지에서 달려 나가 닿는 데까지 열심히 다다라서 종내는 사라진다.
'풍경'은 쇠와 바람이 부딪혀서 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딪힌 그 순간의 소리는 청아하기가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그 이미지 만으로도 순간의 해탈을 가능케 하고 애써 종교를 말하지 않아도 믿음에 대한 갈구를 미루어 의식하게 한다. 이런들 저런들 뭐 어떠한가! 종교가 믿음이 되었던, 믿음이 종교가 되었던 그 누군가의 영혼에 한 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날의 마음 날씨는 이미 '맑음'이 아닐까?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의 한 소절은 읊을 때마다 글 속에 그리움이 절절하여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풍경소리 하나로 어쩌면 이렇게도 애절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지 언어가 마술에 걸린 것 같다.
우리 집 거실에는 모퉁이마다 다양한 소리를 내는 풍경이 달려있다. 풍경소리 듣는 걸 좋아해서 풍경 모으는 게 남다른 취미다. 결혼하고 신혼집에 제일 먼저 달아 올린 것도 동그란 도넛 모양의 도자기로 만든 풍경이었다.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무게 균형을 맞춰 4줄로 길게 발처럼 늘어뜨린 모양이었다. 바람이 불면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창문은 늘 열어두었다. 베란다 창과 현관문에서 맞바람이 부는 날은 스무 개의 동그라미가 서로 얼굴을 비비듯 찰랑거리며 하프 소리 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와 함께 태교를 하던 나는 책을 보다가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카세트테이프 모차르트의 태교 음악은 멈췄지만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나의 단잠이 깨길 기다렸다.
나에게 '풍경'은 바람이 전하는 위로의 말이었다. 심약한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질 때도 풍경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차렸다. 감미로운 클래식, 듣기 좋은 노래도 물릴 때가 있지만 풍경 소리에 싫증을 내고 걷어 내린 적은 없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양한 소리가 교차로 어우러지면 늘 새로운 교향곡이 탄생했다. 여행을 가서도 여행지에서의 기념물 리스트는 늘 풍경이 1번이었다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돌아올 때도 예쁜 소리가 나는 '풍경'을 사 왔다.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는 동(銅)으로 만든 자그마한 종이 달린 '풍경'을 들여왔다. 전통 매듭으로 엮어 내린 풍경은 이른 아침 깊은 산속 종달새 소리처럼 맑았다. 나에게 풍경이 갖는 의미는 갖고 싶다는 물욕이 아니라 '바람(원하는 바)'이다. 일상의 행복을 기원하는 도구였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음이 존재하지만, 또 그만큼의 좋은 소리도 같이 존재하기에 들어서 좋은 소리로 공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아파트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거나 사람의 손이 덜 미치는 곳에는 어김없이 풍경을 매달아 소리를 입힌다. 출입문엔 특히 맑은 소리가 나는 풍경을 달아 두었다. 제일 큰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들어오는 건 남편, 힘없이 열리는 소리는 딸, 말 대신 '슥~' 열고 들어오는 건 시크한 우리 아들. 크고 작은 이 모든 소리는 대문이 여닫히는 모양새로 인하여 생겨난 '인트로 음향'이 되어 리드미컬한 공간으로 바꿔준다.
산다는 건 기쁨과 슬픔이 교차로 오는 것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럴 땐 가만히 풍경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애써 시간을 내고 형식을 갖추고 앉아 싱잉볼의 울림을 듣는 것도 번거롭다면 번거롭다. 한 줄기 바람만 있다면 풍경은 울린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걱정 마! 걱정하지 말라는 내 편의 힘찬 응원가로 들린다. 소리에 놀라는 사슴에게 인기척은 "주의를 집중해!"라는 생존본능을 갖게 하듯, 살면서 늘 소심한 새가슴이었던 나에게 풍경소리는, "지금이야 뛰어!" 하는 선지자의 호루라기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넋을 놓고 들어도 지루하지 않으니 어쩌면 나는 '소리 공양'을 받는 무척이나 관(冠)이 높은 신분일까? 한번 풍경소리에 취하면 생각이 멀리멀리 간다.